김명전 칼럼
한국 사법부, 극우화의 미로에 빠졌나
2026년 2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대법정.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례없는 ‘12.3 내란’ 수괴인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판결이 내려졌다. 지귀연 판사는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겉으로 보기에 무기징역은 중형처럼 보이지만 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내란죄의 엄중함과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법이 허용하는 가장 낮은 수준의 형량이다.
재판부는 판결문 곳곳에 향후 상급심이나 역사적 재평가 과정에서 내란죄 여부를 다시 다툴 수 있는 ‘논쟁의 불씨’를 심어놓았다. 실질적으로는 내란의 실행을 부정하고 피고인에게 법적·정치적 탈출구를 열어준 셈이다.
이번 심판의 핵심 내용을 되짚어 보면 재판부는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피고인의 방어논리를 사실상 그대로 추인했다. 재판부는 ‘실질적인 물리적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내란죄의 핵심 구성요건인 ‘폭동’의 범위를 극히 협소하게 해석했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국가 권력이 시스템을 통해 행사하는 조직적 폭력의 위험성을 외면한 처사다.
나아가 재판부는 국회의 정당한 탄핵 의결을 ‘다수의 일방적 폭주’로 묘사한 피고인의 주장을 사실상 인용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통치권 차원의 결단’이라는 논리가 검찰의 반론 없이 법정의 공식기록으로 남게 됐다. 이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할 때 전유물처럼 사용하다 폐기된 ‘고도의 통치행위’ 논리를 21세기에 다시 소환한 격이다.
결과적으로 지귀연의 판결은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한 피고인에게 ‘법 기술’을 동원해 은신처를 마련해 주었다. 훗날 극우 세력이 집권하거나 정치적 지형이 변했을 때 이 판결문은 계엄을 정당화하고 내란을 ‘구국의 결단’으로 수정할 수 있는 논리적 화약고가 될 것이다.
또한 이는 향후 특별사면이나 감형을 위한 법적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단순히 한 판사의 개인적인 가치관 일탈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법부 내부에 공고하게 뿌리 내린 보수법관들의 ‘진영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이다.
‘법 기술’로 내란죄 논쟁의 불씨 남긴 판결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는 나치 독재에 부역하며 법의 이름으로 반인륜적 범죄를 정당화했던 법률가들을 향해 엄중한 경고를 던졌다. 그는 이를 ‘법률적 불법(Statutory Unlawfulness)’이라 명명했다. 법이 실정법 형식을 갖추고 절차적 정당성을 띤다고 하더라도 그 실질적 내용이 인간의 존엄을 해치고 정의의 원칙에 반한다면 더이상 법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오늘날 지귀연의 판결은 법을 라드브루흐가 경고한 ‘법이 아닌 법’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헌법정신을 무시한 채 법 해석의 기술을 동원해 진영을 보호하는 방패로 삼았다. 사법권의 남용이자 그 자체로 불법적 행위다. 양심에 따른 보편적 정의가 실종되고, 법을 왜곡하는 법정은 더 이상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보루가 될 수 없다.
예일대 법대 에이미 추아(Amy Chua) 교수는 현대 정치의 위기를 ‘정치적 부족주의’로 진단했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이성적인 정책이나 이념보다 ‘우리 편인가, 저쪽 편인가’라는 진영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집단이 위기에 처하면 이들은 이성을 뒤로하고 하나의 부족으로 응집한다.
한국의 보수는 전통적 지지 기반을 잃었다. 그 후 종교적 근본주의 집단, 극우 유튜브 세력과 손잡았다. 그들은 확증편향의 벽 안에 갇혀 자신들만의 진실을 제조하고 소통한다. 사법부 역시 이 거대한 부족주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법관들이 부족을 지키는 전사로 기능하는 순간 법치는 실종된다. 사법부에 드리운 극우화는 바로 이 부족주의가 낳은 산물이 아닌가 싶다. 이들은 헌법적 가치보다 절차적 정당성을 악용하여 권력의 불법적 행위에 면죄부를 준다.
사법 엘리트주의가 극우적 국가주의와 결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가의 안보나 발전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와 민주적 절차는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12.3 내란을 옹호하는 논리 또한 같은 결이다. 이 퇴행적 공생은 국가 공동체를 양극단의 분열로 몰아넣고 있다.
해법은 사법부의 민주화에 있다
문제의 해결은 결국 사법부의 민주화에 있다. 법원이 특정 진영의 방패나 정치적 도피처로 이용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제왕적 권한의 분산이다. 법원의 인사와 예산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때 사법부는 권력의 외압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인사와 예산 집행의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윤석열을 정점으로 한 내란세력의 범죄를 법 기술로 가리려 해서는 안된다. 법의 준엄함을 통해 자유민주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야말로 사법부가 지향해야 할 본연의 임무이자 진정한 보수의 길이다. 지귀연의 판결은 역설적으로 한국 보수가 미로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절망적 상황을 보여주는 유언장이나 다름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