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우후죽순 금융중심지, 올바른 방향인가
세계 금융지도를 보면 한가지 흐름이 보인다. 주요 국가들이 금융을 몇몇 핵심 도시를 축으로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런던을 국제금융의 중심으로, 에든버러를 자산운용과 연금 분야의 중심지로 키워왔다. 미국 역시 뉴욕이 금융의 중심이지만 기술·벤처 자금은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중국은 홍콩과 상하이의 기능을 분화했고, 일본도 도쿄를 중심에 두되 오사카는 파생상품 시장 등에서 보완적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 사례는 분산이 아니라 전략적 분업의 결과다. 중심은 명확했고, 기능은 겹치지 않았으며, 정책 일관성이 유지됐다. 성과 또한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국은 2009년 서울과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하며 두 축 체제를 선택했다. 서울은 종합금융, 부산은 해양·파생상품·공공금융 특화라는 구도다. 부산에는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가 자리했고, 한국자산관리공사와 한국예탁결제원 등 주요 공공 금융기관도 이전했다. 최근에는 디지털 금융과 블록체인 산업을 더하며 특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 생태계는 여전히 성장 과정에 있다. 시장의 두께, 국제적 위상, 민간 금융회사 집적도 등에서 갈 길이 멀다. 이런 시점에서 제3 금융중심지 지정 논의가 다시 제기돼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책 목표는 분명 중요하다. 다만 금융은 산업단지처럼 물리적 분산이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산업이 아니다. 집적과 신뢰, 네트워크의 밀도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추가 지정이 기존 두 축의 정책 자원과 전문 인력을 분산시키지는 않을지, 기능 중복으로 전략의 선명도를 떨어뜨리지는 않을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부산이 해양금융과 디지털금융, 자산운용을 중심으로 특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새 중심지가 핀테크나 자산운용 등 유사 분야를 지향할 경우 정책 효율성 저하 가능성이 크다. 기능이 겹치면 경쟁은 발생하지만 국가 차원의 시너지는 제한적일 수 있다.
결국 판단의 기준은 단순한 지정 도시 수의 확대가 아니라 국가 금융전략의 완성도여야 한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두 축의 역할을 더욱 명확히 하고 일관된 지원으로 밀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인지, 아니면 새로운 거점을 추가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낼지에 대한 정밀한 정책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금융허브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략의 일관성과 시간의 축적이 만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를 늘리는 방향이 아니라 국가 금융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높일 선택이다. 세계 금융도시들의 경험은 말해준다. 중심은 분명해야 하고, 역할은 겹치지 않아야 하며, 성과는 긴 시간의 축적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