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정도원의 웃음, 김미숙의 눈물
정도원은 웃으면서 법정을 나왔다. 김미숙은 이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정도원은 지난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가 발생한 양주 채석장의 삼표그룹 회장이다. 김미숙은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로 새벽에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스물넷 김용균의 어머니다. 김미숙은 일터에서 스러져간 산재 희생자의 유가족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산업재해로 희생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린다. 반면 한국 최고의 로펌 김앤장을 변호인단으로 꾸린 대기업 회장은 무죄판결에 ‘환호’한다.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그 유가족들의 처절한 투쟁 끝에 만들어진 법이다. 2020년 12월 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농성’이 시작되었다. 나흘 뒤 김미숙과 고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 등이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당시 유가족들은 “내 자식은 이미 갔지만 다른 아이들은 살려야 한다”며 영하의 추위 속에서 29일간 단식을 이어갔다. 단식 29일째 되는 날 마침내 중처법이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국회가 산재 희생자 유가족의 피눈물을 닦아준 것이다.
‘산재탈출’은커녕 제구실도 못하는 법
이 법은 2022년 1월 27일, 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먼저 시행됐다. 2년 뒤인 2024년 1월에는 적용 대상이 5인 이상 중소기업까지 넓혀졌다. 이 법은 일터 안전을 게을리한 경영책임자를 무겁게 처벌해 우리 사회를 ‘산재왕국’에서 탈출시키려고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제구실을 못 한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4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2년간 중처법을 적용해 수사하고 기소했으나 산재 사망은 거의 줄지 않았다. 일터 사고사망자는 지난 5년간 연간 800명 대 초중반을 오르내린다.
이 법의 실효성 위기는 일터뿐만 아니라 다른 데 즉 법정에서도 왔다. 최근 ‘중처법’의 오작동을 소리 높여 말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지난 10일에 있었던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 1심 선고 공판이었다. 이날 이영은 의정부지법 형사3단독 판사는 관할 지역인 양주의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고로 세 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사망한 중처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삼표그룹 실질적인 최고 경영자인 정도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12월 열렸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정도원 회장은 안전보건과 관련한 사안을 포함해 그룹 전반에 관련한 보고를 받고 지시를 했으며 이를 토대로 중처법 상 경영책임자로 볼 수 있다”라며 징역 4년 형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영은 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삼표그룹의 규모나 조직 등에 비추어 볼 때 중처법에 규정된 의무를 구체적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라며 “중처법 상 경영책임자, 즉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에도 부족하다”라고 밝혔다.
이 판사는 정 회장과 함께 기소된 이종신 전 삼표산업 대표이사에도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삼표산업 본사 안전 책임 담당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양주사업소 관계자 3명에게는 금고형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했다. 고용노동부와 검사가 법이라는 그물을 던져 잡은 대어를 판사가 풀어주고 피라미만 요리한 셈이다.
지금까지 대기업은 12건의 중처법 소송에서 실형 선고가 전무한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중소기업은 117건을 기소당해 사업주가 62%인 73건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44건은 집행유예 등이었다. 일각에서는 산재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냐며 비아냥거린다. 대형 로펌 살찌우려고 법을 만들었냐고까지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대기업, 중처법 소송에서 실형 빗겨가
판사가 현실을 너무 모르는 책상물림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판사 가운데 상당수가 삼표처럼 규모나 조직이 커도 많은 ‘오너’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개입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오너는 일터에서 대통령보다 더 힘센 왕 노릇을 하는데도 말이다.
이런 판사는 산재 희생자들의 넋을 달랠 수 없다. 유가족의 아픔을 보듬어주지도, 김미숙의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다. 이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법관은 언제 나올 수 있을까. 사법부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풀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