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구안 없는 ‘홈플러스 사태’ 수사로 번지나

2025-03-13 13:00:40 게재

신용등급 강등 사전인지 여부가 핵심 … 고소·고발 없이 수사 가능

개인피해자·증권사 ‘먹튀 논란’ 대주주 MBK파트너스 고발 준비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한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신용등급 강등을 사전에 인지했으면서도 채권 매각을 결정했다는 의혹이 계속된다. 채권발행 주체는 홈플러스지만 지분을 100% 보유하고 경영진도 파견한 지배력을 고려할 때 MBK가 사실상 이를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금융당국이 관련 의혹 확인에 나설 예정이고 중개를 맡았던 증권사들도 사기로 고발을 준비하고 있어 이 문제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논란을 넘어 형사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신용평가업계와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정기 신용등급 강등(2월 28일 A3→A3-·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일주일 전인 지난달 21일 50억원 규모 기업어음(CP)와 20억원 규모 전단채를 발행했다.

홈플러스는 이와 별개로 지난달 25일 신영증권을 통해 820억원의 전자단기사채(ABSTB·전단채)를 발행했다.

이에 대해 신영증권과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가 등급 강등을 예상했음에도 채권 발행에 집중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금감원, 신영증권·신용평가사 검사 = 전단채 등에 투자한 개인들의 손실 위험이 커지고 불완전판매 의혹이 불거지자 금융감독원도 나선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했다고 밝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전단채 발행이 막힌 탓이다. 하지만 유동성 악화에 따른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기업회생신청 직전까지 전단채를 발행했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사회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사실상 상환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단채를 발행했다면 사기 혐의에 해당할 수 있어서 법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금감원은 신영증권과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검사를 통해 의혹 사실 여부를 밝힐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확인되면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기관 통보를 할 수 있어 홈플러스는 물론 대주주인 MBK로까지 불똥이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BK가 재무 위험을 숨기고 채권 매각을 결정했다면 동양·LIG 사태와 같은 대형 형사사건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와 별도로 금감원은 MBK에 대한 검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당초 검사권 발동에 신중했던 금감원은 MBK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금감원 검사권이 기관전용 사모펀드와 이를 운용하는 업무집행사원(사모펀드 운용사, GP)의 불건전행위 금지 등으로 제한돼 있다는 점에서 홈플러스 사태 해결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금융시장의 안정 또는 건전한 거래질서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기관전용 사모펀드의 업무와 재산상황에 관해 검사할 수 있다고 명시한 만큼, MBK의 자금 운용 전반에 대한 법적 문제점을 들여다볼 가능성이 높다.

홈플러스 유동화 전단채 피해자들이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자금을 상거래채권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피해 투자자 거리로 나서 = 홈플러스 전단채를 샀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홈플러스와 MBK 그리고 카드사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홈플러스 유동화 전단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12일 금감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홈플러스와 주주사 MBK, 카드사들이 짜고 친 판에 속아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전단채는 홈플러스가 구매전용카드로 물품을 구입함으로써 카드사가 갖게 된 카드대금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유동화증권이다. 발행 주관사인 신영증권 특수목적법인(SPC)은 카드대금채권으로부터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수령할 권리를 기초로 유동화 전단채를 발행한다. 이를 통해 카드사는 홈플러스가 내야 할 카드대금을 일찍 수령할 수 있다. 만기 3개월 상품인 홈플러스 전단채 미상환 잔액은 4019억원이다. 이중 3000억원가량이 개인에게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대위는 “홈플러스는 MBK 소유 국내 대형할인매장인데 이렇게 큰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회생신청을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홈플러스의 고의성 부도행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롯데카드와 현대카드는 이번 사태로 단 한 푼의 피해도 입지 않고 손실을 전단채 피해자들에게 전가하고 말았다”며 “이번 사태는 홈플러스와 카드사가 모의해 고의로 일으킨 범죄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대위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을 향해 “MBK 오너로서 다른 사주들처럼 위기에 대응하지 않았고 수많은 국민들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낸 부도덕한 날치기 행각만 벌였다”고 주장했다.

◆“자구안 없으면 소송 간다” = 신영증권 등 증권사 연대는 홈플러스를 대상으로 형사고발과 소송에 나선다. 다만 오는 18일에 열리는 정무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까지 기다렸다 MBK의 자구안이 나오지 않으면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고발 대상에 MBK를 포함시키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광일 MBK 부회장이 홈플러스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MBK의 지배력을 고려할 때 홈플러스의 단기물 발행과 연관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신영증권은 MBK의 자구안이 나오지 않으면 일부 증권사를 포함해 소송인단을 꾸려 소송을 강행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실제 일부 증권사 법무팀과도 논의가 이뤄졌고, 소송을 위한 법무법인 선정도 논의 중이다.

앞서 금정호 신영증권 사장과 김광일 부회장이 지난 주말 미팅을 가졌다. 김 부회장은 MBK가 홈플러스 기업회생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는 정황을 설명했고, 신영증권측은 사기발행에 무게를 두고 설전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국세청 조사4국이 MBK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해 또 다른 리스크가 발생했다.

국세청은 MBK의 홈플러스 점포 매각 과정에서 세금을 제대로 신고했는지, 탈루한 혐의가 없는지 살펴볼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 세무조사 후 MBK가 투자하고 회수한 두산공작기계(DN솔루션즈) 등으로 조사 대상이 확대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병주 회장 개인도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장세풍·이경기·김영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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