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트럼프 윤석열, 그리고 국민의 상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기간 피격을 당하고도 주먹을 불끈 쥐어든 사진으로 ‘왕의 귀환’을 알렸다. 당시 그가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장에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의외로 죽이 잘 맞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호불호를 떠나 유사한 풍채와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면 흥미로운 상황이 펼쳐질 거라는 이야기를 지인들과 나누곤 했다. 12.3 비상계엄 전의 일이다.
윤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됐다가 얼마 전 풀려났다. 구치소 정문을 의기양양하게 걸어나온 그는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쥐고 들어보였다. 마치 트럼프처럼.
탄핵심판 절차와는 무관한 일이지만 헌법재판소 담장 바깥의 격랑은 한층 거칠어졌다. 극렬 지지자들은 내친 김에 탄핵 기각까지 가자며 기세등등하다. ‘헌재 협박’은 이제 일상이 됐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서부지방법원을 때려 부순 난동꾼들은 ‘국민저항권’ 운운하며 “국가가 불법”이라고 입방아를 찧는다.
여기에 길어지는 헌재 평의, 어쩐 일인지 침묵을 이어가는 윤 대통령, 느닷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온 야당 의원들의 모습이 겹친다. 용산에서도 무려 ‘4대 4’ 기각 또는 각하를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물론 헌재가 본안에만 집중한다면 변론 내내 이른바 ‘계몽령’과 ‘부정선거 음모론’을 설파한 윤 대통령측의 손을 들어주긴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거대야당의 전횡이 아무리 심했다 한들 이를 계엄령 선포와 군경 동원으로 돌파하려는 대통령을 용납할 수는 없다는 게 국민 10명 중 6명(한국갤럽 기준)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구속취소 이후 국민들은 탄핵정국 막판까지 마음 졸이게 됐다.
윤 대통령측의 ‘질식수비’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중요한 순간마다 야당과 수사기관들이 둔 악수가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탄핵을 남발함으로써 탄핵의 엄중함을 스스로 퇴색시켰다. ‘법알못 법사위원장’을 필두로 한 국회 탄핵소추단은 굳이 못박지 않아도 될 ‘내란죄’를 탄핵사유에 명시했다가 삭제해 윤 대통령측에게 반격의 명분을 제공했다. 경쟁적인 수사, 수사대상 논란, 역량부족은 구속취소의 빌미가 돼 차곡차곡 쌓였다는 쓴소리가 법조 전문가들 사이에서 들린다.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 대통령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펴며 불복했다. 이듬해 지지자들이 워싱턴 국회의사당 폭동을 일으켰고 1500여명이 붙잡혔다.
귀환한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첫날 “상식의 혁명”을 선언하며 이들을 모두 사면·감형했다. 말 안 듣던 1기 각료, 자신을 제대로 변호하지 못한 측근들은 대폭 물갈이하고 ‘충성파’를 대거 배치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혁명(?)이 상상으로만 끝났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