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풍경

해고 도와줘요, 권리구제 대리인!

2025-03-14 13:00:01 게재

얼마 전 근로자 A의 해고사건을 맡은 권리구제 대리인 B로부터 전화가 왔다.

“진행 중인 사건과 새로 수임한 사건 등의 재판준비로 사건에 충실하기 어려워 사임했으면 합니다.”

근로자는 사실관계뿐만 아니라 노동법 민법 등 법리적 쟁점에 대해서도 다퉈야하기 때문에 공인노무사 변호사 등 대리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근로자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대리인을 선임하기란 쉽지 않다. 노동위원회는 근로자의 월 평균임금이 300만원 미만인 경우 무료로 대리인을 선임해준다. 법원의 ‘국선변호사’와 비슷하다.

아직은 심문회의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호기롭게 권리구제 대리인의 사임을 허가해준다.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면 자신이 당한 해고가 부당한 이유를 기재한 이유서를 제출한다. 이유서에는 해고가 이뤄진 경위, 당시의 상황, 해고가 부당한 이유 등을 기재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자료와 함께 제출한다. 만약 근로자가 대리인을 선임했으면 대리인이 근로자를 대신해 이유서를 작성하고 심문회의에 함께 참석한다.

A씨에게 새로운 권리구제 대리인 C를 선임해준다. 그런데 며칠 뒤 두번째 C로부터 전화가 온다.

“다음 달부터 법원 출석 일정이 계속 잡혀 있어서 도저히 대리인 업무를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권리구제 대리인 두차례 사임과 세번째 선임

슬슬 부아가 난다. 노동위원회는 사건접수 후 두달 이내에 심문회의를 열고 한달 내에 판정서를 작성해야 한다. 권리구제 대리인이 두번씩 변경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대리인을 억지로 붙들고 사건을 진행할 수는 없다. A씨에게 다시 전화한다.

“그동안 대리인으로 변호사를 원하셨는데 심문회의까지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공인노무사로 선임해 드리면 어떨까요?”

권리구제 대리인이 스스로 사임하는 경우 노동위원회가 제대로 된 권리구제 대리인을 선임해주지 않았다며 항의하는 경우가 있는데 A씨는 다행히 흔쾌히 이해해줬다. 새로 선임된 권리구제 대리인 D에게 그동안 대리인이 두차례 변경된 사실을 알리고 이유서를 빨리 제출해 줄 것을 부탁한다.

A씨는 근로계약 기간 만료일이 정해져 있는 기간제근로자로 아파트 청소업무를 했다. 그런데 사장 E는 한달 정도 근로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A씨에게 근로계약 기간만료를 통지했다. A씨는 회사의 통지에 따라 출근하지 않았으며 고용지원센터에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E는 실업급여 처리과정에서 A씨의 근로계약 기간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복직하라고 했으나 A씨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윽고 심문회의가 열렸다.

“회사 측에 묻겠습니다. A씨에게 복직하라고 한 것은 A씨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A씨의 실업급여 신청으로 근로계약 기간만료 통지가 잘못된 것을 알고 복직하라고 한 것입니다. A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A씨에게 묻겠습니다. 복직을 희망한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는데 회사의 복직 명령에도 불구하고 회사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어차피 회사로 돌아가도 며칠 후면 근로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에 복직하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장 E가 근로자 A에게 복직 명령을 했고 그 기간의 임금도 다 지급했습니다. 그렇다면 A씨의 구제신청 목적인 원직복직이 달성돼 구제신청의 이익이 없는 것 아닌가요?”

권리구제 대리인의 활약

주심위원의 질문에 대리인 D가 답변한다. “고용주는 실질적으로 A씨의 근무태만을 이유로 해고한 것이므로 이를 인정하고 취소하는 절차를 밟았어야 합니다. 따라서 복직 명령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공익위원들은 권리구제 대리인이 있어서 심문절차를 통해 필요한 쟁점을 손쉽게 정리해나갈 수 있었다. A씨는 결국은 대리인 D를 통해 해고로 인해 본인이 입은 손해를 어느 정도 보전할 수 있었다.

권리구제 대리인 선임 건수는 매년 3000건으로 증가 추세지만 보수는 40만원 수준이다. 근로자와 면담을 통해 이유서를 작성하고 상대방의 답변서에 대응하기 위해 수차례 내용을 보완한다.

또한 중앙노동위원회 심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나절을 소비하고 이동비용도 만만치 않다. 많지 않은 보수지만 근로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권리구제 대리인이 항상 고마운 이유다.

이해웅 중앙노동위원회 심판2과 조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