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익 12.4조 싱가포르DBS 비결은
디지털 혁신·확장 지속해 사상 최대 실적 …16년 이끈 CEO, 여성으로 세대교체


지난달 10일 오랜 수장인 피유시 굽타(Piyush Gupta) CEO의 퇴임 예정 소식과 함께 지난해 기록적인 실적을 발표했다. 상업은행 및 자산관리 부문 호실적에 힘입어 연간 순이익이 11% 증가한 114억 싱가포르 달러(약 85억달러·약 12조400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실적 호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먼저, 작년 한 해 상업은행 부문의 순이자 수익이 5% 증가하며 150억 싱가포르달러를 기록했다. 대출과 예금이 각각 3%, 4% 늘면서 순이자마진(NIM) 성장에 기여했다.
DBS의 최대 주주는 미국 시티은행의 명의수탁 싱가포르법인(Citibank Nominees Singapore Pte Ltd)으로 19%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이 11%로 상당수 지분을 들고 있는데 1968년에 이 은행 설립을 적극 주도한 건 테마섹이었다. 대규모 국책은행을 키워 개발 프로젝트 비용을 조달하고 더 나아가 싱가포르를 아시아 금융허브로 자리 잡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2006년 아시아 최초 인터넷 뱅킹 서비스=싱가포르증권거래소(SGX)에 상장된 DBS는, 싱가포르가 독립 후 빠르게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함께 성장해왔다. 1998년 싱가포르의 과거 최대 은행이던 POSB 은행을 합병하면서 이 은행 고객까지 포함한 160만명의 대규모 리테일 고객 기반을 확보했다.
2001년 홍콩에 자회사 ‘DBS Bank (Hong Kong) Limited’(星展銀行·성전은행)를 설립해 중국 본토 및 홍콩, 마카오를 담당케 했다. DBS 홍콩은 홍콩보안법과 관련해 중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 곳 중 하나다. 이로 인해 HSBC, 중국은행보다 호감도가 높아지고 이것이 고스란히 매출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대만에도 똑같이 DBS 대만은행이라는 자회사가 활동하고 있다. 이 외에 인도와 아랍에미리트, 인도네시아, 베트남에도 진출해 있다.
DBS는 2006년 아시아 최초로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선보인 은행 중 하나다. 2010년에는 디지털 뱅킹 서비스를 선보여 굳이 은행에 방문할 필요가 없이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게 했다. 이어 2012년에는 신형 iB 시큐어 디바이스(iB Secure Device)를 선보이며 디지털 서명으로 온라인 뱅킹의 안전도를 더 높였다. 이렇게 인터넷·디지털 뱅킹 서비스가 이른 시점에 제공된 건 싱가포르 정부의 ‘스마트 네이션(Smart Nation)’ 프로젝트 덕이었다. 싱가포르는 한국과 함께 온라인 뱅킹 서비스가 가장 발달한 국가로 손꼽힌다.

세 차례의 전산망 장애 이후 CEO인 피유쉬 굽타는 ‘소프트웨어 버그가 원인으로 추정된다’며 자사 전산망의 대대적 점검 및 보강을 약속했다.
◆16년 수장 굽타 CEO가 이끈 성장의 역사=무역 전문지 아시안 프라이빗 뱅커(APB)에 따르면 DBS는 현재 UBS 그룹과 HSBC에 이어 아시아(중국 제외)에서 세 번째로 큰 자산관리 회사다. 작년 12월 현재 관리 자산이 4260억 싱가포르 달러(3192억달러·464조5000억원)이다.
DBS는 2024년 기록적인 실적을 거두며 강력한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자기자본이익률(ROE) 18%로 글로벌 대형은행인 JP모건체이스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싱가포르 증시에서 가장 높은 기업 가치를 자랑하는 DBS의 주가는 지난해 50% 이상 상승했으며, 최근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금융과 자산관리 부문에서도 강한 성장세가 나타났다. 순이자 수익 증가와 더불어 카드 수수료 및 자산관리 수수료 증가에 힘입어 이 부문 수익은 13% 상승한 102억 싱가포르달러를 기록했다. 상업은행 수수료 수익도 23% 증가한 42억 싱가포르달러를 기록했다.
DBS는 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배당금은 2023년 대비 27% 증가한 63억 싱가포르달러로 책정됐으며, 올해부터는 분기별 15센트의 추가 자본 환원 배당금을 도입할 예정이다. 또한, 30억 싱가포르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도 발표하며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DBS를 16년 동안 이끌어온 피유시 굽타 CEO는 2025년 3월 28일 연례 주주총회를 끝으로 퇴임할 예정이다. 굽타는 2009년 씨티그룹에서 DBS로 합류한 이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사업 확장을 통해 DBS를 아시아 최고 은행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그의 리더십 아래 DBS는 지속적인 실적 향상과 탄탄한 재무구조를 구축했으며, 2024년 사상 최고 순이익을 달성했다.
◆후임 탄 수샨은 AI활용 디지털혁신 구상=굽타의 후임은 탄 수샨으로 DBS 역사상 첫 여성 CEO가 탄생하게 된다. 탄 수샨은 DBS에서 15년간 근무하며 자산 관리 및 소비자 금융 부문을 이끌어 온 금융 전문가다.
싱가포르 출신인 그는 1989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바링스은행,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등 글로벌 금융사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2010년 DBS에 합류해 자산관리 부문을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탄 수샨이 새로운 CEO로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DBS는 최근 몇 년간 싱가포르시장에서 강력한 성장을 이어갔지만, 해외시장에서는 여전히 도전 과제가 남아 있다. 특히, 홍콩, 대만, 인도를 포함한 주요 해외 시장이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 미·중 무역긴장과 글로벌 금융 시장의 변동성은 DBS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협하는 요소다. 탄 수샨은 인도와 대만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해외시장을 확대하고, 자산관리 및 글로벌 거래 서비스를 포함한 고수익 비즈니스 부문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인공지능(AI)과 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