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훈 칼럼

합리적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

2025-03-18 13:00:00 게재

지난 2월 2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수요 예측 및 전기설비 계획 등을 담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4-‘38)을 확정해 발표했다. 전력수요의 지속적 증가를 전망했으며, 재생에너지 및 원자력 발전을 크게 늘리고 석탄 및 천연가스 발전을 크게 줄이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재생에너지를 매년 약 6.1GW씩 늘리는 것으로 계획했다.

사실 이 계획은 제법 도전적이다. 지난 문재인정부에서의 재생에너지 보급 실적은 연평균 3.5GW였고, 2023년 1월에 발표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2-’36)에서의 재생에너지 보급목표는 연평균 5.3GW였기 때문이다.

제약조건 직면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시 정부는 2개의 제약조건에 직면해 있었다. 첫째는 반도체 생산단지 및 AI 데이터센터 등에서 향후 늘어날 전력 수요를 충족시켜야 했다. 그래서 10.3GW 규모의 신규 발전설비 건설이 계획됐다. 이것은 천연가스 발전소 21개에 해당하는 작지 않은 규모다. 물론 전력수요가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년마다 수립되므로, 차기 계획에서 늘어난 전력수요가 얼마든지 반영될 수 있다.

두번째 제약조건은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⑤항에 따라 전력수급기본계획이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및 2050 탄소중립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탄소중립 법제화의 정도가 좀 강한 편이다.

이 제약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무탄소 전원인 재생에너지 및 원자력을 크게 확대하고 화석연료인 석탄 및 천연가스 발전을 크게 축소할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을 어기게 된다. 물론 준법은 분명 좋고 필요한데, 그것이 전력수급 안정성 확보를 어렵게 하여 정전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음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태양광 및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분명 확대되어야 하지만, 몇 가지 관련 문제점이 분명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우선 비싸다. 따라서 확대를 위해서는 가격을 더 지불하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한전의 적자 확대를 전제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게 되면 국민들의 부담을 눈덩이처럼 키워 결국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수용성은 악화된다.

한편 재생에너지 및 원자력발전은 호남 및 영남에 집중되는 반면에 그 수요처는 대부분 수도권이다. 따라서 송전망의 대폭 확대가 필요한데, 이것은 호남 및 영남에서 수도권 사이에 있는 지역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 내가 쓰지도 않는 전기의 공급을 위해 내가 사는 곳 주변에 송전탑을 건설한다는데 이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및 원자력발전은 대표적인 경직성 전원이라 유연하지 못하다. 게다가 재생에너지는 원할 때 전기 생산이 어려운 간헐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발전량이 일조량 및 풍량에 따라 들쑥날쑥하는 변동성까지 가진다.

천연가스 활용 추진하는 일본 주목해야

태양광 발전 보급실적은 천연가스 발전소 66개에 해당하는 33GW를 이미 넘었다. 현재 가동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24기 26GW에 달한다. 둘을 합하면 60GW에 육박하지만 지난 2일 오후 1시의 전력수요는 42GW에 불과했다. 저장이 불가능한 전기의 특성상, 발전량이 수요보다 많아도 정전이 발생하기에 봄 및 가을에 정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반면에 석탄 및 천연가스 발전소는 경직성, 간헐성, 변동성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화석연료라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결국 에너지 수입의존도 94.4%의 에너지 부족 국가이자 전력망이 외국과 연결되지 않은 전력섬 국가인 우리는 무탄소 전원과 화석연료 사이에서 합리적 믹스를 정해야 한다.

물론 국민적 합의만 있다면 전기요금을 2~3배 올려 걷은 돈으로 태양광 발전기와 원자력 발전소를 대폭 늘리면서 전기가 남을 때 저장했다가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를 대거 설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과 산업체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두 차례의 전기요금 인상이 모두 산업용에만 집중되어 산업계는 무척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월 일본이 제7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우리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화석연료 발전비중을 ‘23년의 58.2%에서 ’38년 20.7%로 대폭 축소했다. 하지만 일본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40년 화석연료 발전비중을 우리의 약 2배 수준인 30~40%로 하면서 천연가스 도입을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요컨대, 우리는 탄소중립기본법에 묶여 에너지 안보보다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천연가스 발전의 대폭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미달성을 가정하고 천연가스의 안정적 확보 및 지속 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과연 나중에 웃는 자는 누구일까? 정치권과 정부의 관심을 촉구한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미래에너지융합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