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소상공인 구조조정 전략을 짜자

낮은 생존율에 허덕…금융지원으로 연명, 빚만 늘어

2025-03-18 13:00:15 게재

폐업 100만명 시대 도래 … 2006년 이후 가장 많아

과당·출혈 경쟁 여전, 다산다사 구조 해결 안돼

정부정책 보호에만 급급, 자생력 강화에는 소홀

“코로나가 끝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나빠졌다. 하루하루가 힘들다.”

최근에 만난 소상공인 A씨의 하소연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20년 가까이 식당을 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어려웠던 적은 없다. 주변의 빌딩 지하식당가에도 빈 점포가 여러 곳이다. A씨는 자신의 미래 같아 암울하다.

소상공인의 삶이 매우 악화되고 있다. 과열경쟁에 생산비용 상승, 소비심리까지 얼어붙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벼랑 끝’ ‘위기’ ‘죽을 맛’ 등이 소상공인을 상징하는 단어가 된지 수년째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자초했다고 평가한다. 자금대출 중심의 정부정책이 오히려 소상공인 빚만 늘린 결과를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벌이가 줄자 정부대출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지속된 탓이다.

소상공인 정책기조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소상공인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구조조정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퇴로 다각화와 사회안전망 확충, 협업과 재도전 등에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개인사업자 900만명이 월소득 100만원 아래 = 각종 통계는 소상공인의 민낯을 보여준다. 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2023년 폐업사업자는 98만6000명이다. 비교 가능한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가장 많다.

코로나 대유행 기간인 2020년(89만5000명) 2021년(88만5000명)은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8년(84만4000명) 2009년(84만1000명)보다도 많다. 이 추세대로면 지난해 폐업자는 100만명을 넘겼을 것이라는 추정된다. 노란우산공제 폐업 공제금도 2019년 6042억원에서 2024년 1조3908억원으로 급증했다.

폐업자가 늘면서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지난해 19.8%였다. 2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63년 통계작성 이후 처음이다. 폐업으로 내몰리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 폐업률은 음식업 소매업 등 소상공인이 많은 업종에서 특히 높았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빚을 갚지 못하는 소상공인들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고금리와 지속되는 내수침체 때문이다.

신용평가기관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개인사업자 중 금융기관 대출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이들은 1년 전보다 35% 증가한 15만5060명이었다. 이들이 갚지 못한 대출은 30조7248억원에 이른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 2024년 기준 자영업자 평균 대출금액은 1억2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 10명중 4명(38.4%) 가량은 1억원 이상의 대출을 안고 있었다. 이자 부담액은 월평균 84만3000원으로 연평균 8.4%의 금리를 부담하고 있다. 28.4%는 매월 100만원 이상의 이자를 내고 있다.

이로인해 자영업자 10명 중 4명 이상(43.6%)은 실적악화와 재무부담 등으로 3년 내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벌이가 신통치 않아 폐업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세청에 연간(2023년 기준) 소득을 ‘0원’(소득 없음)으로 신고한 개인사업자가 105만5024명, ‘0원 초과 1200만원 미만’으로 신고한 개인사업자는 816만5161명이었다. 월 소득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개인사업자가 처음으로 900만명을 넘었다. 전체 개인사업자의 75.7%에 이른다. 코로나 대유행 직전인 2019년보다 311만1434명 늘어난 규모다.

◆대출 중심 정부정책 실패 = 전문가들은 소상공인 부채증가는 정부정책 실책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부 마다 소상공인 자영업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과잉진입 예방, 경영안정 지원, 사업전환과 퇴출 유도, 경쟁력 강화, 해외시장 진출 등이 주요 내용이다. 매번 반복됐다. 약간 달랐지만 다양한 정책이 추진됐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를 계기로 정책금융 지원과 채무조정 확대가 중심이었다.

하자만 종합대책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소상공인의 과잉진입은 나아지지 않았고 사업전환 성공사례는 극히 일부분이다.

자생력이 향상됐다는 수치는 보기 힘들다. 정부의 금융지원은 빚만 늘렸다.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실 사업자의 퇴출을 막아 소상공인생태계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상공인의 근본적 문제해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셈이다. 낮은 생존율이 확인해 준다. 한국소비자인증의 업종별 창업 5년차 폐업률에 따르면 숙박 및 음식점업은 77.2%, 도소매업은 70.3%다.

생존율이 각각 22.8%. 29.7%인 셈이다. 2023년 외식업체 폐업률은 21.5%로 코로나19가 유행했던 시기(2019년~2022년)보다 높다.

따라서 소상공인 정책기조의 전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금기어였던 ‘구조조정’을 포함한 퇴로 다각화와 사회안전망 확충, 협업과 재도전 등에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 전문가로 알려진 현직 대학교수 B씨는 “역대 정부의 소상공인 대책은 보호에만 몰두한 나머지 자생력 강화에는 소홀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간 개별 소상공인 지원에서 협업을 통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동일 업종의 협동화를 통한 규모화와 공동브랜드 추진 등을 제시했다.

정부도 소상공인협동조합를 추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실패했다. 정부가 내걸고 정책자금을 지원하며 협동화 목표 숫자를 밀어 붙인 탓이다. 공동브랜드는 정부와 장관이 바뀌면서 다른 사업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는 “소상공인 근본 문제인 많이 창업하고 많이 망하는 ‘다산다사’(多産多死)형 구조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침체로 인한 자연스런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퇴로 다각화와 사회안전망 확충 등 구조조정 전략을 세밀하게 짜야 한다”며 “시급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본부장도 “개별 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며 “시장에서 밀려나는 소상공인이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과 일자리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정책전환에 속도 내야 = 다행히 정부도 정책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우리동네 크라우드펀딩사업’이 대표적이다. 지역주민이나 직장인, 투자자가 우리동네 유망 소상공인에게 투자하면 그에 따른 수익을 ‘현금수익과 현물 리워드(상품쿠폰 할인권 등)로 돌려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사업이다. 소상공인과 지역주민이 협업하는 구조다.

‘혁신소상공인 투자연계지원’(LIPSⅡ)’ 사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혁신소상공인 육성정책이다. 민간투자사가 먼저 투자하면 정책자금이 지원하는 형태다. 창업정책에서 성공한 팁스(TIPS,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구조를 소상공인에 적용한 사례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 대학교수 B씨는 “정부가 과감히 정책전환을 해 소상공인생태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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