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중국 AI와 반도체 굴기에 대한 단상

2025-03-19 13:00:00 게재

올해 초부터 밀어닥친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충격의 여진이 아직 가시지 않은 가운데 중국 선전의 스타트업 모니카(Monica)가 지난 5일 스스로 판단하고 일을 수행하는 자율형 AI 서비스 마누스(MANUS)를 내놓아 또 한번 시장을 흔들고 있다. ‘당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바꿔주는 AI’라는 슬로건처럼 마누스는 기존 도우미 수준을 넘어선 에이전트(Agent) AI로 주목받고 있다.

공개된 영상에서 마누스는 단순한 대화형 챗봇과 달리 사용자의 개입 없이 여러 단계를 거쳐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력서 정리, 주가분석, 여행계획 수립, 부동산 검색 등등 이용자가 요청하는 작업을 스스로 수행한다. 마누스는 AI 에이전트 성능평가 기준인 ‘범용인공지능 성능평가(GAIA 벤치마크)’에서 오픈 AI의 딥 리서치를 앞선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포브스지는 마누스의 등장에 대해 ‘제2의 딥시크 모먼트’라고 평가하며 “자율 AI 에이전트의 시대가 열렸고 중국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고 평했다.

미국 ‘매그니피센트7’ 추격하며 중국 AI 굴기 가속하는 ‘팹4’

그동안 미국이 주도해 온 AI 생태계에 중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밀면서 글로벌 기술패권 구도에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 ‘매그니피센트7’처럼 중국의 대표적인 테크기업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로 통칭되는 ‘팹(패뷸러스) 4’가 AI 모델을 출시하면서 기술 굴기를 가속화 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중국 이용자 2억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AI 비서 앱 ‘쿼크(Quark)’를 업데이트해 이미지 생성 요약 번역 등 AI 기반의 기능을 통합했다. 바이두는 텍스트에서부터 비디오, 이미지와 음성 등 다양한 유형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신규 인공지능(AI) 모델 2종을 공개하며 빅테크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텐센트의 AI 챗봇 ‘위안바오’는 딥시크를 제치고 중국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 순위에 올랐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근 보고서에서 딥시크 R1 출시가 미국 매그니피센트7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3조달러 증발시켰지만 중국 ‘팹4’의 시가총액은 2배 증가한 1조600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AI 굴기가 미국의 AI 헤게모니를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분석도 있다. 브뤼셀에 본부를 둔 유럽의 대표적 싱크탱크 브뤼겔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AI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지만 서방과의 협력없이 자체적인 AI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기술굴기는 AI뿐만이 아니라 반도체 분야에서도 본격화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화웨이는 중국이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노광장비’의 자체 개발을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노광장비 독점기업인 네덜란드의 ASML은 미국의 제재로 EUV가 없는 중국을 두고 글로벌 업체들에 비해 10~15년 뒤처져 있다고 평가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EUV 장비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기술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이게 되면서 ASML뿐 아니라 메모리 파운드리 등 전세계 반도체 업계에도 파장이 일 것이다. EUV 장비는 7나노(나노미터, 10억분의 1m) 이하 칩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필수장비인데 중국의 파운드리 기업 SMIC가 이를 도입하면 첨단 칩 양산이 가능해져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에 균열이 이는 셈이다.

글로벌 AI 경쟁에 나설 무기조차 부족한 한국

중국 AI와 반도체굴기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우리나라일 것이다. 당장 삼성전자 하이닉스와 관련 반도체 생태계에 속해 있는 기업들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 카카오의 카나나, LG AI연구원의 엑사원, SK텔레콤의 A.X, KT의 믿음, 엔씨소프트의 바르코 등이 대규모 언어모델(LLM)과 AI분야에서 조금씩 진전을 보이지만 글로벌 시장 도전은 아직 염두도 못 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엔비디아 고성능 AI 반도체칩 H100의 국내 보유량은 2000여개에 그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가 보유한 15만개에 견줘보면 1/75이다. 글로벌 AI경쟁에 출전할 무기조차도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AI와 반도체 경쟁력이 당장 무너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10년 뒤라면 생각을 달리 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중국 딥시크가 이룩한 저비용 모델의 방법론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에게도 기회의 창을 제공하고 있다. 개별기업에 대한 지원보다 정부는 혁신을 위한 과감한 인프라 투자와 규제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

안찬수 주필

안찬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