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커진 저축은행 구조조정 확대…당국, M&A 규제 완화
인수·합병 허용대상 범위 넓혀, 부실 요건 허들 낮춰
업계 10위 상상인 적기시정조치, 저축은행 3곳은 유예
1조원 이상 규모의 PF대출 정상화 펀드 조성·운용 추진
저축은행들의 부실이 커지면서 금융당국이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해 현재 저축은행 인수·합병(M&A)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또 현재 위축돼 있는 저축은행의 중저신용자들에 대한 금융 공급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저축은행업계과 함께 ‘저축은행업권 간담회’를 열고 ‘저축은행 역할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과도하게 엄격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현행 M&A 기준을 합리화해 수도권 내 취약 저축은행들이 추가적으로 M&A 허용 대상으로 포함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19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업계 10위인 상상인저축은행에 대해 적기시정조치 중 하나인 ‘경영개선권고’를 부과했다. 또 페퍼·우리·솔브레인저축은행에 대해서는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했다. 저축은행 업권은 전체적으로 부동산PF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경영실적이 악화됐다. 2022년 1조562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지만 2023년 5758억원 적자를 냈고, 작년에도 397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말 기준 연체율은 8.5%, 고정이하여신비율(부실채권)은 10.7%로 부실이 이어지고 있다.
◆M&A 실적 전무, 수도권 규제 풀어 = 금융당국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무분별한 대형화를 막기 위해 저축은행간 M&A 기준을 마련했다. ‘원칙적 불허, 예외적 허용’이라는 방침을 세우고 동일 대주주의 영업구역이 확대되는 3개 이상 저축은행 소유·지배를 제한했고, 영업구역이 확대되는 저축은행간 합병을 불허했다.
하지만 업황 악화 등으로 저축은행간 M&A을 비롯해 시장자율 구조조정이 필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M&A기준이 발목을 잡았다. 2023년 7월 M&A 기준을 완화해 비수도권 및 부실(우려) 저축은행 등에 대해 영업구역이 확대되는 M&A를 허용했지만 이에 따른 M&A 실적은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비수도권 저축은행은 영업구역 4개까지 확대되는 인수합병이 허용돼 있지만, 수도권 저축은행의 경우 △부실(우려) △그레이존(BIS비율) 편입, △구조조정 촉진 필요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영업구역을 4개까지 확대되는 인수합병을 허용했다.
금융당국이 마련한 ‘저축은행 역할 제고방안’에는 M&A 기준상 예외 적용되는 구조조정 저축은행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M&A 대상 부실(우려) 저축은행 기준은 적기시정 조치(유예 포함)를 받거나, 검사 결과 재무상태가 적기시정 조치 기준에 해당될 것이 명백한 경우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최근 2년간 분기별 경영실태 계량평가에서 자산건전성 4등급 이하에 해당한 경우도 포함된다.
그레이존 편입 대상 저축은행 기준도 현재는 BIS비율이 규제비율 +2%p 이내(9%, 자산총액 1조원 이상 10%)인 경우로 제한돼 이지만, 개선안은 규제비율 +4% 이내(11%, 자산총액 1조원 이상 12%)로 기준을 완화했다.
구조조정 촉진이 필요한 저축은행 기준에는 '충족명령 이행이 불가한 대주주 결격사유 발생으로 주식처분명령이 예상되는 경우'도 포함시켰다. 대주주 결격사유는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 처벌법 위반으로 1000만원 벌금형 이상에 상당하는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 등을 말한다.
저축은행 M&A 유인을 높이기 위해 저축은행법상 정기 대주주 적격성 심사도 면제해주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금융지주회사법상 저축은행 인수시 대주주 심사가 면제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지역·서민금융공급 확대 = 저축은행들이 부실 확대와 영업환경 악화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중저신용자에 대한 자금 공급이 위축됐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지역·서민금융공급 확대라는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사잇돌대출 공급을 확대하기로 했다. 대상 차주를 저신용자 중심으로 제한한 결과 부실 증가·보증 공급여력 감소 등으로 안정적 공급이 제약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급 요건을 ‘신용하위 30%에 70% 이상 공급’에서 ‘신용하위 50%에 70% 이상 공급’으로 개선했다.
영업구역내 여신비율 산정시 햇살론에 대한 가중치도 부여하기로 했다. 저축은행은 총여신 중 일정비율 이상의 여신을 영업구역 내 개인·중소기업에 대해 취급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수도권은 50% 이상, 비수도권은 40% 이상이다. 다만 영업구역내 여신비율 산정시 사잇돌대출, 민간 중금리대출은 영업구역 내 신용공여액에 150%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다. 현재 정책금융상품인 햇살론은 가중치가 적용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150% 가중치를 적용하는 인센티브를 부여해 공급 확대를 유도하기로 했다.
또한 예대율 산정시 민간 중금리대출(개인신용평점 하위 50%에 대출)에 대해서도 일정 비율(10%)을 예대율 산정에서 제외시키기로 했다. 현재 저축은행 예대율은 100% 이내로 제한돼 있다. 햇살론과 사잇돌 대출은 예대율 산정시 대출금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밖에도 복수 영업구역 저축은행 수도권 여신 쏠림 완화, 지역재투자 평가제도 개선 등이 대책에 포함됐다.
◆PF 중심에서 탈피, 중저신용자 영업역량 강화 = 저축은행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최근 몇 년간 과도하게 부동산PF 영업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부동산PF 영업을 하지 않은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의 연체율은 업권 전체 연체율 8.5%의 절반 수준인 4%에 그친다.
오랫동안 개인 신용대출 중심으로 영업을 해온 SBI저축은행은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신용평가시스템(CSS)을 통해 중저신용자에 대한 위험 관리와 함께 대출금리도 낮출 수 있었다.
금융당국은 중소형 저축은행의 가계신용대출 활성화를 위해 저축은행중앙회를 중심으로 민간 전문기관과 협업해 저축은행업권 맞춤형 CSS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기로 했다. 가명정보 처리, 데이터 결합 등을 이용해 중소형 저축은행간 대출 심사·관리 관련 데이터를 공동으로 활용하고, 취약차주와 금융거래 이력이 적은 신파일러에 대한 신용평가역량 제고 등을 위해 네이버페이 스코어(플랫폼 정보), 통신사 정보 등 대안정보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펀드 조성해 부실PF 사업장 신속 정리 = 저축은행들의 건전성 제고를 위해 1조원 이상 규모의 저축은행 PF대출 정상화 펀드 조성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안에 저축은행업권 공동펀드를 조성하고 선순위(재무적 투자자)와 후순위(자산매도 저축은행 등)로 구분해 선순위 비중을 20~30%로 구성할 예정이다. 은행·보험 신디케이트론 등 외부 투자자, 희망 저축은행을 포함해 재무적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계획이다. 경·공매 등이 어려운 부실PF 대출 및 토지담보대출으ㄹ 매입 대상 자산으로 하고 부실자산 고정화 방지, 신속한 재구조화·재매각 등을 위해 펀드 운용기간을 최소화(2~3년)하기로 했다.
부동산PF 성격의 토지담보대출 연체율은 2금융권의 경우 지난해말 기준 21.71%로 전분기(18.57%) 대비 3.14%p 상승하는 등 부실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부실PF 정리·재구조화 촉진과 상시적인 건전성 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부실PF 정상화 공동펀드를 조성하고, 저축은행 전문 NPL관리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은 올해 상반기 내에 감독규정 개정 등을 통해 시행될 예정이다.
한편 금융당국은 올해 하반기 전문가 논의를 통해 대형·중소형 저축은행간 차등화된 건전성 규제체계 마련 등 ‘저축은행 발전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