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정년연장 논의 구조개혁 지렛대 삼는다

2025-03-20 13:00:02 게재

장용성위원 “고용·임금체계 개편 없으면 부작용만”

다음달 보고서 내고 정치권 논의에 뛰어들 가능성

국민연금 개혁안 처리 맞물려 관련 논쟁 본격화될 듯

한국은행이 정년연장 논의를 주도해 구조개혁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후 조기대선이 있을 경우 정년연장 논의가 쟁점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제대로 된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평소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이창용 총재의 의지도 분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용성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고용시장을 유연화하거나 임금제도를 개편하지 않고 정년만 연장하면 부작용이 상당히 있을 것”이라며 “현행 임금체계에서 정년연장은 안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신인 장 위원은 노동분야 등 거시경제 석학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장용성 한은 금융통화위원 사진 한국은행 제공

장 위원의 논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지금과 같이 고용이 경직돼 근로계약 해지가 어렵고, 연공서열식 호봉제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정년만 몇년 더 연장하면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는 “고용시장이 유연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년을 연장하면 고령 근로자의 높은 임금이 지속돼 청년들 일자리 창출 등에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퇴직후에 재고용이 일반화된 일본은 임금을 적게 받아도 좀 더 일할 수 있어 기업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했다.

한은은 이르면 다음달 이날 장 위원이 강조한 주장을 계량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보고서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한 고위관계자는 “중앙은행이 책임있는 기관으로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경제모형에 기초해 통계와 수치로 말할 것”이라며 “현재 내부적으로 연구작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장용성 한국은행 금통위원은 19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은행에서 기자간담회가 열고 정년연장 문제 등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 한국은행 제공

실제로 한은은 보고서 준비를 위해 장기간 누적된 고용 및 임금 등과 관련한 데이터를 활용해 구조개혁 없는 정년연장이 가져올 결과를 수치로 내놓을 예정이다. 이러한 작업은 사실상 이 총재가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사석에서도 “조기대선이 열리면 문제를 적극 제기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 한은의 개입에 대해 부정적인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한은 고위관계자는 “이 총재가 물러서지 않고 할 말은 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정치권이 선심성 정책으로 정년연장만 들고 나올 경우 중앙은행과 정치권 또는 특정 정당과의 공방전도 예상할 수 있다.

한편 여야 정치권은 국민연금 보험료(13%)와 소득대체율(43%)을 올리는 내용의 개혁안을 사실상 합의했다. 이에 따라 모수개혁을 내용으로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년연장 논의가 본격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동안 노동계와 야당을 중심으로 2033년부터 국민연금 수급 개시연령이 65세로 연장되는 것에 맞춰 근로자 정년을 비슷한 나이로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문재인정부에서도 정년연장 필요성은 제기됐지만 구체적인 진전은 없었다. 민주당은 지난 12일 ‘20대 민생의제’를 발표하고 △주4일제 근무 △정년연장 △비정규직 차별 개선 등의 노동관련 현안에 대한 과제를 제시했다. 이들 현안을 사실상 대선공약으로 내세워 전면화한다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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