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서 5500만달러 패밀리 오피스 사기
중국계 고액자산가 피해 주장
전직 직원들 자금 횡령 혐의
싱가포르에 설립된 한 중국계 부호의 패밀리 오피스에서 5500만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직원들에 의해 횡령된 것으로 드러나 싱가포르 고등법원이 해당 직원 4명의 자산을 동결하는 명령을 내렸다고 니케이아시아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계 초고액 자산가인 중 런하이는 자신의 패밀리 오피스인 판다 엔터프라이즈와 소유 기업 리펑 인터내셔널(LFI)에서 거액의 자금이 부정하게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패밀리 오피스는 부유층 가문 자산관리를 위한 사설 금융기관이다. 일반 은행과 달리 금융업 라이선스 없이 운영할 수 있다.
고등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중 런하이는 패밀리 오피스 전직 직원 4명이 회사 자금을 횡령했으며, 이들이 운영하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록 법인이 연루됐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지난주 이들의 자산이동을 전 세계적으로 금지했다. 이는 법원이 자산 동결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는 의미라고 니케이아시아는 전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중 런하이는 2023년 12월 이런 정황을 포착한 후 2024년 1월까지 해당 직원들을 해임했다. 이후 외부 감사팀이 조사한 결과, 판다 엔터프라이즈와 LFI에서 총 7400만 싱가포르달러(미화 약 5500만달러)가 부정하게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직원 세 명은 정상 급여보다 각각 293만, 267만, 276만 싱가포르달러를 과도하게 지급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한명은 버진아일랜드에 등록된 법인을 이용해 미화 2500만달러를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이 직원은 회사 자금을 빼돌리기 위해 문서를 위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해당 직원들은 자신들 중 한 명이 급여와 보너스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중 런하이는 이를 부인했다. 이들은 자산 동결 조치를 철회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으나 기각됐다.
이번 사건은 싱가포르가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의 신뢰를 다시 한번 시험받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니케이아시아는 지적했다.
싱가포르는 최근 몇 년간 부유층들의 패밀리 오피스 설립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왔다. 작년 말 기준으로 이들의 수는 2000개를 넘어서 전년 대비 600개 증가했다.
그러나 작년 싱가포르에서는 중국 출신 인사 10명이 불법 도박 등으로 축적한 자금을 세탁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30억 싱가포르달러(약 22억달러) 규모의 돈세탁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정부 세제 혜택을 받은 6개의 패밀리 오피스가 이들과 연계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싱가포르 금융당국(MAS)은 자국 내 외국인 부유층의 자금 유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2023년부터 MAS는 회계법인 EY 등 외부 전문가를 동원해 패밀리 오피스를 통한 외국인 자산 유입을 철저히 검토하고 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