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조선, 세계 질서 재편 속 국가전략산업으로 부상

2025-03-21 13:00:02 게재

미국 전략국제연구소 ‘선박 전쟁’ 대응전략 강조

중국, 민관융합 조선산업으로 해운·조선·해군 강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과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세계 질서가 요동치는 흐름 속에서 해운·조선산업이 국가전략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쟁의 축은 미국과 중국이지만 유럽연합 러시아 일본 등 지정학적 강국들도 자국 안보를 위한 제조업과 국방력을 강화하는 게 필수라는 인식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9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제안한 중국 선박에 대한 추가 수수료와 관련한 행정명령 초안을 작성 중이라고 전했다. 미무역대표부가 지난달 21일 제안한 중국산 선박이나 선사에 대한 제재 방안은 24일 공청회를 앞두고 미국 안에서도 광범한 반발과 우려를 낳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강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무역대표부는 중국 해운기업 소속 선박이 미국 항구에 입항할 때마다 선박당 최대 100만달러(약 14억원), 중국에서 제조한 선박을 운영하는 선사의 경우 미국 항구에 입항하는 중국산 선박에 최대 150만달러(약 21억5000만원)의 수수료 등을 부과하는 안을 제안했다.

미국이 한국 조선산업과 협력해 중국 조선을 견제하고 자국 산업을 키우는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사진은 지난 13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정비를 마치고 출항한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호. 사진 한화오션 제공

중국의 해운·조선산업에 대한 제재 필요성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됐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4월 30일 공화당 상·하원,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이 중국의 해운·조선 부상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해양전략을 위한 의회지침’을 초당적으로 발의했고, 이를 반영한 ‘선박법’을 12월 양당 의원들이 함께 발의했다.

선박법은 올해 1월 회기가 만료되면서 자동 폐기됐지만 새롭게 시작한 의회에서 다시 발의될 예정이다.

김동윤 외교부 북미경제외교과장은 지난 11일 국회 토론회에서 “(미 의회는) 지난해 4명이 선박법을 공동발의했지만 올해는 50명을 모아 공동발의하겠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중국 조선산업 견제 의지 담은 ‘선박 전쟁’ = 미국의 중국 해운·조선에 대한 견제 의지는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11일 공개한 미국의 전략국제연구소(CSIS) 보고서 ‘선박 전쟁’(Ship Wars)에도 담겨 있다. 중국이 정부 주도 아래 전략적으로 조선산업을 키웠고, 이는 상업선박 뿐만 아니라 해군력까지 이어져 미국의 경제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중국이 ‘군민융합전략’(MCF)을 통해 세계 조선산업을 지배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 해군은 소규모 연안해군에서 20년만에 지역 강군으로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세계 선박시장에서 수주점유율이 2000년 5%, 2015년 32.3%에서 지난해 70.6%까지 올랐고 한국은 2015년 26.1%에서 지난해 16.7%로 줄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00년대 초 주요 정책 변화를 통해 조선 강국으로 떠올랐다.

2002년 당시 중국 총리였던 주룽지는 국영 중국선박공업그룹(CSSC) 본사를 방문해 “2015년까지 세계 최대의 조선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2003년 중국 국무원은 ‘해양경제발전 구상’을 발표하며 보하이(발해) 상하이 광저우 세 곳에 주요 조선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들 지역은 현재 중국 조선산업 생산 중심지다.

2003년 이후 중국은 조선산업 관련 최소 25개의 정부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제조 2025 계획’에도 조선업을 전략적 우선 산업으로 지정했다.

정책 관심이 커지자 중국 조선업체에는 대규모 재정과 지원이 연결됐다. 2006~2013년 사이 중국 정부의 조선업 보조금은 910억달러(약 120조원)에 달했다. 이 기간 조선업이 올린 수익의 46%에 해당하는 규모다.

중국정부가의 정책이 보내는 신호는 중국 전역에 새로운 조선소를 탄생시켰다. 2000년에서 2010년 사이 중국에서 운영 중인 조선소 수는 46개에서 296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연간 생산량은 3700% 이상 증가했다.

과열된 생산은 세계적인 공급 과잉 문제를 낳았다. 낮은 가격에 건조한 중국 선박은 세계 선박시장에서 가격을 떨어뜨리고 경쟁업체들이 시장에서 퇴장하거나 규모를 축소했다.

2007~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는 세계 조선업계에 다시 충격을 줬다. 세계 무역이 침체되고 신규 선박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세계 조선소 수주물량은 급감했다.

글로벌 조선생산량은 2011년 정점을 찍은 후 급속히 줄었고, 수주 잔고가 소진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중국 국무원은 새로운 조선업체 설립을 일시 금지하고 통합을 촉진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정부는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작성한 ‘화이트 리스트’ 업체를 중심으로 정책을 폈다. 2014년 51개(대부분 국영기업)로 시작한 리스트는 2019년 70개로 증가했다. 화이트 리스트에 포함된 업체에는 세계적 수요가 저조한 것과 관계없이 투자와 생산을 늘리라는 지시가 내려갔고, 살아남은 조선소들은 더 크고 효율적으로 운영됐다.

◆트럼프 1기 해군강화 실패, 2기 대응책 주목 = 통합노력은 2019년 국영 중국선박공업그룹CSSC)과 중국선박중공업그룹(CSIC) 합병으로 정점에 달했다. CSSC가 CSIC를 흡수합병하는 형식으로 지난해 통합을 완료하며 1200억달러(약 170조원) 규모 자산을 가진 세계 1위 거대 조선기업으로 탄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CSSC는 지난해 미국 전체 조선업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건조한 선박보다 더 많은 상업용 선박을 건조했다. 선박 종류도 부가가치가 낮은 벌크선박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크루즈선박,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자동차 운반선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중국은 2033년까지 인도될 상선의 62%를 수주하고 있다. 이 중 컨테이너선의 80% 이상과 LNG운반선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중국 해군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보고서는 “불과 30년만에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은 전함 수 기준 세계 최대 해군으로 성장해 미 해군을 능가했다”고 적었다. 2022년 기준 중국 해군은 351척의 전투함을 운영하고 있고, 이는 미 해군의 294척을 넘어선 수치다. 중국 조선소들은 대형 순양함과 구축함 뿐만 아니라 항공모함도 건조하고 있다.

중국 해군 전력은 중국 해안에서 더 멀리까지 나아가는 ‘원양해군’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 해군 교리도 이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2019년 국방백서에서 “(해군은) 근해 방어에서 원해 보호로 전환하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중국 지도자들은 2035년까지 국방·군사 현대화를 완성하고 21세기 중반까지 세계적인 수준의 군대를 보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고서는 중국이 이 목표를 달성하면 미국을 중국 주변부에서 더 멀리 밀어내고, 대만과 남중국해 같은 주요 해역에서 중국의 입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조선산업을 기반으로 해운과 해군력을 강화한 것을 본 미국도 체계적으로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 대통령에 도전한 2016년 선거에서 미 해군 규모를 350척 규모로 키우는 캠페인을 주장했고, 첫 임기를 시작하며 2017년 해군함정 355척을 확보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2017년 말 279척에서 2020년 293척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1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정책을 내놓을 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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