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기금, 적대적 M&A에 선 긋기

2025-03-21 13:00:01 게재

국민연금·원자력환경공단, MBK와 계약에 포함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영향 … 펀드 위기설까지

국민연금에 이어 한국원자력환경공단도 MBK파트너스의 6호 블라인드펀드 출자 계약에서 ‘적대적 M&A(기업 인수·합병) 금지’ 조항을 포함했다. 사실상 MBK의 자금운용 방식과 ‘선 긋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조치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으로 시작된 ‘공공기관 자금이 적대적 M&A에 투자되는 것이 맞느냐’는 여론으로 고심하던 기금·연금 등 공공적 성격의 자금들이 홈플러스 사태로 운용 기준을 변화하는 촉매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1일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공단 산하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방폐기금)이 최근 MBK 6호 블라인드 펀드로 약 250억원 출자를 확정하면서 ‘적대적 M&A 투자 건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이는 방폐기금이 MBK에 출자한 자금의 사용 범위를 제한한 것으로, 경영권 분쟁 투자 건 자금 요청(캐피탈 콜)에 응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캐피탈 콜은 출자금을 일시에 납입하지 않고, 약정한도 내에서 출자 이행의 요구가 있는 때에 출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방폐기금은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방사성폐기물 관리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2009년에 4조원 규모로 조성한 기금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사모투자 분야 위탁운용사 4곳을 선정했다.

앞서 국민연금도 지난 2월 6호 블라인드펀드 출자 계약에 동일한 내용을 추가했다. 특히 국민연금은 이런 조항을 앞으로 다른 사모펀드 출자에도 적용한 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관의 결정에는 지난해 MBK가 고려아연과 벌인 경영권 분쟁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선 MBK파트너스의 6호 블라인드 펀드 결성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상반기 3차 클로징(마감)을 예정했지만,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후 악화된 사모펀드의 적대적 M&A에 대한 여론 때문이다.

MBK는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후 국세청 세무조사, 금융감독원 검사 등을 받고 있다. 특히 사모펀드 운용사가 금감원 검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감원은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을 사전에 인지하고 법정관리를 준비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검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전자단기사채 부정거래 의혹, 국민연금 등 상환전환우선주(RCPS) 출자자 이익 침해 여부도 검사 대상이다.

업계에서는 금감원 조사에서 MBK가 신용등급 강등을 미리 알고 있었다거나, 신용등급 강등을 알고도 전자단기사채를 발행했다는 결론이 나오면 출자자들은 출자 자체를 취소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법적으로 제재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 MBK에 출자한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6호 펀드에는 국민연금과 방폐기금 외에도 공무원연금과 다수 증권사, 은행들이 출자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등으로부터 어떤 지침이 있지는 않았다”면서 “하지만 사회적 논란의 중심이 공공적 성격의 기금이 참여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몇몇 기금은 MBK를 위탁운용사로 선정하지 않는 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사재출연 약속 이행 등 홈플러스 수습 과정이 이런 움직임의 확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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