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선거독박’에 우는 기초지자체

2025-03-25 13:00:13 게재

매년 선거철이 돌아오면 지자체 공무원들의 한숨소리가 커진다. 특히 기초지자체 공무원들이 그렇다. 기존업무에다 선거업무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더욱 그렇다. 당장 4월 2일에는 교육감 1명과 기초단체장 5명, 지방의원 17명을 뽑는 재·보궐선거가 열린다. 헌재의 탄핵심판결과에 따라 추가로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내년 6월에는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어 숨이 가쁠 지경이다.

최근 ‘부정선거’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선거업무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생겼다. 가장 최근 치러진 전국단위 선거인 지난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복기해보면 그들의 고충이 이해된다.

기초지자체 공무원들 '부정선거론'에 선거업무 기피 현상 심해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총람’에 따르면 각 투표소마다 한명씩 두는 투표관리관은 ‘선거관리 경험이 풍부한 지방공무원이 차출됐다. 1만4259명을 위촉했는데 시·도 공무원 30명을 뺀 나머지는 모두 시·군·구와 읍·면·동 직원이다.

투표관리관 지시 받아 업무를 보조하는 투표사무원의 경우 전국 1만4259개 투표소에 12만5295명을 배치했다. 이 가운데 지방공무원이 6만2181명으로 절반에 가깝다. 국가공무원은 2542명으로 지방 공사·공단 직원 2944명보다 적다. 개표사무원 역시 전체 7만7186명 중 국가공무원은 4578명인 반면, 지방공무원은 2만7262명이나 차출됐다.

결국 선거관리위원회 손발 역할을 하는 게 기초지자체 공무원이라는 얘기다. 선거공보물 발송과 벽보 부착, 투·개표소 준비 등도 모두 이들 몫이다. 다음달 단체장 보궐선거를 치르는 한 지자체의 경우 투표관리관으로 전체 6급 공무원 중 33%가, 투표사무원으로 7급 이하 공무원 55%가 각각 투입된다.

반면 선거 총괄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는 다르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이 선관위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휴직자는 133명이다. 5월 대선을 기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겹친 지난 2022년 3월과 6월에는 각각 204명과 226명이 휴직을 했다. 선거가 없던 직전 2021년 같은 달 각각 93명과 101명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많다.

기초지자체 공무원들에게 휴일 근무 대신 하루 특별휴가나 시간당 지급되는 수당은 그리 매력적인 요인이 아니다. 새벽 5시가 되기 전 출근해 저녁 7~8시에 업무가 끝나는데 수당은 15만~23만 가량으로 최저시급 수준이다. 특별휴가는 꿈도 꾸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내 업무할 시간도 부족한데 왜 선거업무에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느냐’는 자괴감 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은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제기된 ‘부정선거론’이다. ‘투표용지 조작’이나 ‘가짜 표’ 등 근거 없는 이야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해당 공무원들은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너도 연루된 것 아니냐’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현장에서는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야기’라고 입을 모은다. 투·개표 절차를 아는 사람이라면 의혹조차 제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각 정당과 후보가 지정한 참관인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참관인은 17만2253명으로 이 가운데 정당과 후보자가 선정한 투표참관인이 99.9%다. 개표참관인 1만7469명 중 후보자 1명과 구·시·군 선거관리위원회가 추가 선정한 1750명(10.0%)을 제외한 대부분이 정당과 후보자가 정한 사람이다.

개표에 참여한 공무원들은 “손가락 하나만 잘못 움직여도 참관인들이 지적한다”며 옴짝달싹하기도 어려운 현장 분위기를 전한다. 조작된 용지를 집어넣을 경우 해당 공무원은 남은 공직생활은 물론 연금까지 모두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인지 되묻기도 한다.

선거업무 중앙부처 및 광역지자체 공들무원들과 짐 나눠야

국민세금으로 살아가는 ‘공복’인 만큼 선거업무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기초지자체 공무원만 ‘독박’을 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중앙부처 공무원이나 광역지자체 공무원들이 나눠야 할 짐이다. 선관위도 일손이 부족하겠지만 본연의 업무를 기초지자체 공무원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기초지자체 공무원들의 선거업무에 대해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아가 이들이 현장업무에 대한 부담 없이 제대로 충전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세심한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 ‘공복’이니 견디라고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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