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근로자 보호지침, 권고에 그쳐 현장선 유명무실

2025-03-25 13:00:15 게재

국회·청와대 등도 고용불안 외면

전문가 “사업이전시 포괄승계해야”

간접고용근로자 보호 국회 토론회

“실제 고용주인 국가는 간접고용과 3.3% 프리랜서 계약을 묵인하고 용역업체는 20%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등 과도한 이윤을 수취하고 있다.”

한은희 국회 소통관 간접고용·프리랜서 수어통역사의 이야기다. 정부의 공공부문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 고용승계 기준이 있지만 현장에서 권고에 그칠 뿐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 실효성 확보 및 공공부문 용역근로자 고용승계 기대권 보장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서구을),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노노모) 입법연구분과,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강원·부산본부, 정의당 비상구 등이 주최했다.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관계부처가 2019년 9월 발표한 보호지침에 따르면 공공부문 용역계약 체결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윤석열정부 대통령실이 용산 이전으로 2022년 5월 청와대가 민간에 개방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에 청와대 관리·활용 업무를 위탁한 뒤 시설관리 업체 교체과정에서 김성호 청와대노조 위원장만 고용승계를 거부당했다. 김 위원장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국회사무처도 간접고용근로자의 고용불안을 외면했다. 한은희 수어통역사는 “공보담당관실에서 직접고용을 목적으로 계획서를 작성해 국회사무처에 제출했다지만 국회사무처는 급여 등 특수직렬에 수어통역과 관련된 법적 근거 사례 등이 없어 예산 승인이 불가능하다며 끝내 직접고용 계획이 무산됐다”고 지적했다.

정인탁 민주일반노조 강원본부장은 춘천시 교통약자특별교통수단인 ‘봄내콜’ 사례를 통해 “지방공기업인 춘천도시공사마저 고용승계와 고용유지를 외면하는데 민간은 오죽하겠느냐”며 “하다못해 민간위탁을 수탁한 사기업도 고용부의 ‘민간위탁 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라 특별한 사장이 없는 한 기존 근로자를 고용승계해야 하는데 공기업은 가이드라인을 적용받지 않아 승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21대 국회에서 사업이전시 근로관계 승계를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사업이전에서의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고용승계 의무법)이 처음으로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기업의 합병 분할 영업양도 등이 일어날 때 법적으로 근로자의 고용관계를 유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이 규율이 없어 법원에서 고용승계를 다툰다. 22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송옥주·김태선 의원이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근로자의 고용승계 기대권 보호를 위해 관련법을 입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번째 주제발제를 한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에서 발의된 고용승계 의무법률안과 각국의 입법례를 분석하면서 “기업의 일방적 의사결정으로 실시되는 기업변동으로 인해 근로자나 노조의 법적 지위가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보호할 수 있도록 규율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은성 노무사(노노모 입법연구분과장)는 주제발제에서 “관련 입법을 여러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며 “사업이전 전체에 대한 특별법 제정이 당장 어렵다면 도급 사업 이전에 따른 경우에 한해서라도 기존 근로관계의 포괄적 승계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박귀청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토론에서 “사업주 변경 시 고용승계에 관한 명시적인 법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법해석론의 한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근로자가 소속돼 있던 기업의 법적 주체가 변경되는 경우의 법제화 필요성에 관해서는 1990년대말, 2000년대 초반부터 수없이 많은 논의가 이뤄져 왔다”면서 “구체적 추진과 결단만이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동욱 고용부 공공노사관계과장은 “보호지침의 경우 확약서 등은 준수되고 있지만 미준수되는 부분에 대해 ‘권고’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면서도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기대권 보장과 관련해서는 분할과 같은 다른 사례보다는 고용승계 관련해 긍정한 판례와 부정한 판례가 공존하기에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상우 행안부 회계계약제도과장도 “현행 법체계상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게 보호지침을 준수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고 시행령·시행규칙에서 위임을 받아 지침을 만들어야 대외적 구속력이 생긴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법령이나 노동관계법령에서 규율할 수 있도록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용우 의원은 “경영상 목적에서 영업의 인수나 양도가 이뤄졌다고 고용이 완전 백지화 된다는 것은 상식이 될 수 없다”면서 “조속히 사업이전 시 고용승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미 발의된 법안들과 함께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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