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 가계자산 535조원 주식·펀드로 대이동

2025-03-25 13:00:13 게재

위험자산 투자 비중 1년 만에 15% 급증…안전자산은 정체

인플레로 자산가치 하락, 신NISA 도입 등 투자환경 조성

막대한 규모의 일본 가계 금융자산이 빠르게 위험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디플레이션으로 자산가치 변동을 체감하지 못했던 일본인들이 주식과 펀드 등 위험자산으로 자산운용의 축을 이동하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급등하면서 안전자산 가치가 하락하고, 정부가 나서서 투자 환경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가계 위험자산 4200조원 = 일본은행이 지난 21일 발표한 ‘2024년 4분기 자금순환통계’에 따르면, 각종 펀드를 비롯한 투자신탁과 주식 등의 비중은 지난해 4분기 말 433조8000억엔(약 4208조원)으로 전년도 4분기 말(378.7조엔)에 비해 14.6% 증가했다. 금액으로는 같은 기간 55조1000억엔(약 535조원) 증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8월 닛케이지수가 폭락하는 등 충격이 있었지만 가계의 투자 의욕은 강해지고 있다”며 “개인 전용 국채 매입도 늘어나는 등 ‘금리가 있는 세상’에 대한 가계의 대응이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또 소액투자자에 대한 비과세를 크게 확대한 신NISA를 지난해부터 본격 도입하면서 올해도 위험자산으로의 이동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위험자산으로 비중 확대는 다른 안전자산의 증가속도와 비교하면 뚜렷하다. 일본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금융자산 잔액은 2230조3000억엔(약 2경1630조원)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2023년 말(2144.5조엔)에 비하면 4.0% 증가한 수준이다.

안전자산인 현금과 예금(1134.3조엔) 증가율이 같은 기간 0.6% 증가한 것과 대비하면 위험자산 증가세는 가파르다. 보험과 연금 등의 증가율도 이 기간 1.1% 늘어나는 데 그쳤다.

다만 전체 가계금융자산에서 위험자산이 차지하는 규모(433.8조엔)는 19.5%에 그친다. 여전히 현금 및 예금(50.9%)과 보험과 연금(24.4%) 등에 비해 비중이 낮은 수준이다.

가계금융부채는 396조5000억엔(약 3845조원) 규모에 달했다. 중앙정부 부채는 1236조엔(약 1경2000조원) 수준으로 가계부채의 3배가 넘었다.

◆개미투자자 빠르게 증가 = 일본 가계가 주식과 펀드 등으로 자산을 이동하는 데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안전자산의 가치 하락이 주된 이유로 분석된다. 1990년 대비 2020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1% 수준에 머물렀던 일본은 최근 3년간 지난 30년 동안 상승한 소비자물가 오름세를 보였다.

사실상 0%대 예금 금리 수준인 일본에서 안전자산만 고집할 경우 보유한 자산의 실질 가치는 10% 이상 하락한 셈이다.

실제로 일본의 개인투자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연말 기준 신NISA 계좌 수는 2560만 계좌로 전년도 같은 기간(2125만 계좌)에 비해 약 17% 증가했다. 소액투자자에 대한 각종 비과세 혜택을 담은 신NISA는 지난해 1월부터 본격시행됐다. 기존 NISA에서 납입 상한액을 높이고, 각종 면세 혜택도 늘리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개미투자자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평가다.

마쓰시타 고이치 일본투자신탁협회 회장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도입한 신NISA는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계좌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올해도 높은 수준의 자금유입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평가했다.

이날 투신협회가 발표한 지난해 12월 말 기준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포함한 공모펀드의 순자산 잔액은 246조엔 규모로 전년 동기에 비해 25% 급증했다. 연간 유입 금액도 16조8000억엔으로 전년도 유입액 대비 89%나 늘었다.

특히 해외주식에 대한 투자가 연간 9조4000억엔(약 92조원) 증가해 전년 대비 2.8배 이상 늘었다. 이는 전체 신규 자금의 절반을 넘는 수준으로 미국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 등으로 자금이 집중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일본 이시바 내각은 전임 기시다 내각에 이어 가계자산을 자본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이달 6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저축에서 투자로의 흐름을 더 확실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야당은 주식 배당이나 양도차익 등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세제 우대가 고소득자나 자산가에 대한 지나친 특혜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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