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충실의무’ 상법 개정…금감원, 재계 반발 강하게 반박
거부권 행사 반대, 공식 문서 총리실 전달키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자본시장 활성화 필요성 강조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 대표적인 모델로 언급
“전 세계 회사법 모범 기준으로서 선도적 역할”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명시한 상법 개정안이 전 세계적으로 예외적인 규제라는 재계 주장에 금융감독원이 또다시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회사법에서 인정받는 제도라는 입장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2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상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금감원이 상법 개정안 관련한) 문서를 만들어서 총리실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에 이번주 공식적으로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상법 개정안의 재의요구권 행사 요구에 “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한다”고 말한 것과 관련한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문서에는 상법 개정안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자본시장 활성화, 해외 투자자 유치 등 국가 경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이날 ‘주주가치 보호 관련 주요 입법례 등 참고사항’을 배포하면서 “재계 및 일부 언론 등에서 주주 충실의무 관련 잘못된 해외사례 등을 인용하고 있어 사실관계를 바로잡고자 관련 내용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미국 50개주 중에서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가 언급된 회사법이 있는 곳은 델라웨어주와 캘리포니아주 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은 “델라웨어주 회사법이 미국 각 주의 회사법 제·개정시 가장 대표적인 모델로 인용돼 왔으며, 미국 모범회사법의 근간이 될 정도로 회사법의 전형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델라웨어주 회사법 및 판례는 미국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 회사법의 모범 기준으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서, 예외적이라는 주장은 델라웨어주 회사법의 위상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알파벳(구글), 아마존, 테슬라, 월마트, 애플, 메타, GE, 코카콜라, UPS, 디즈니, 맥도날드 등 경제전문지 포천이 발표하는 500대 기업 중 68.2%가 델라웨어주에 설립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금감원은 “델라웨어주 외에 다른 주도 법규정 또는 판례를 통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보호의무)를 인정하고 있다”며 “모범회사법을 거의 그대로 주회사법으로 채택하고 있는 36개 주를 비롯해 독자적 주회사법을 제정·운영중인 캘리포니아, 미시간, 뉴욕주 등도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보호의무)를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델라웨어주 회사법이 주주에 대한 이사의 책임을 강행하는 규정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및 그 위반에 따른 법적책임의 대상(상대방)에 회사와 더불어 주주도 병기하고 있는 것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 모두가 충실의무의 보호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델라웨어주 법원은 실무상 합병 등 자본거래에서 주주가 직접 권리당사자로서 이사를 상대로 한 충실의무 위반에 따른 소제기를 인정(원고적격 인정)함에 따라 주주 충실의무 관련 확고한 판례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미 모범회사법이 각주 회사법에 대한 모범규준일뿐 법적 효력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모범회사법은 미 36개주에서 거의 그대로 주회사법으로 채택하고 나머지 주들도 그 일부를 채택하거나 참조해 회사법을 제정하는 등 주회사법으로 치환돼 법적 효력을 갖는다”고 반박했다. 또 모범회사법을 채택한 주 법원들은 해당 주회사법 규정 해석시 모범회사법 조문과 공식주석서를 참조·인용하는 등 사법적 해석의 기준으로도 기능을 한다고 강조했다. 모범회사법 조항 중 이사의 행동기준을 명시한 항목에는 “회사의 최대 이익을 위해 선의와 합리적인 판단으로 행위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공식주석서에 ‘회사’라 함은 기업을 가리키는 대용물이자 전체로서의 주주를 포괄하는 지칭 틀이라고 밝힌 점도 설명했다.
일본 회사법이 우리나라 상법처럼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만을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차이점이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판례와 정부 지침 등에 의해 조직개편거래(주식교환·이전, 합병, 분할 등 자본거래)의 경우 이사의 주주이익 보호의무를 인정하는 등 영미 법체계에 접근하는 양상이라는 것이다.
금감원은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는 이사와 회사 간 위임관계를 전제로 하는 현행 회사법 체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일부 비판이 존재하지만 이사가 전체로서의 주주를 보호하고 그 이익을 극대화할 의무를 지는 것은 회사 제도의 기본 전제이며,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문화된 원칙으로 상법에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다수”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시선집중에 출연해 상법 개정에는 찬성하지만 보완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원장은 “미국은 이사에 대해 형사 처벌 보다는 과징금 등 민사상으로 통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형사 처벌이 되다 보니까 검찰 조사 이슈가 발생한다”며 “민주당이 상법 개정을 하면서 과도한 형사 처벌 방지 등을 같이 하겠다고 약속하면 안전한 장치를 추가할 수 있는데 너무 빨리 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