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선고 앞둔 여야 “임기 단축”…헌재 향한 구애, 빈말?
윤 대통령 “복귀하면 개헌 집중 … 잔여임기 연연 안 해”
민주당 의원 “윤석열 파면되면 총선·대선 같이 치르자”
유리한 헌재 선고 바라는 고육책 관측 … “진정성 의문”
윤석열 대통령과 야당 의원들이 자신의 잔여 임기를 단축할 수 있다는 승부수를 잇달아 던졌다. 헌법재판소로부터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얻어내기 위한 고육책으로 읽힌다. 정치권에서는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는 반응이다. 선출직 정치인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하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임기 단축 카드는 윤 대통령이 먼저 던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탄핵심판 최후 변론에서 “제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먼저 ‘87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개헌과 정치개혁 과정에서 국민통합을 이루는 데도 노력하겠다. 결국 국민통합은 헌법과 헌법가치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개헌과 정치개혁이 올바르게 추진되면 그 과정에서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들이 통합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그렇게 되면 현행 헌법상 잔여 임기에 연연해 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제게는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헌재가 탄핵 기각 또는 각하 판결을 통해 자신을 대통령직에 복귀시켜준다면 임기 단축을 통한 개헌에만 매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임기 단축을 통해 사실상 ‘절반의 탄핵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탄핵 인용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읍소’로 읽힌다.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헌재가 선고일을 공개하면 다시 한 번 ‘임기 단축 개헌’을 약속할 것으로 본다. ‘임기 단축 개헌’을 헌재 재판관들의 마음을 흔들 승부수로 본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국회의원 임기 단축이라는 배수진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25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아직까지 당에서 논의한 적은 없다”고 전제한 뒤 “만약에 (윤 대통령) 파면이 선고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고 하면 국회도 책임을 같이 묻는 차원에서 총선과 대선을 같이 치르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우리 국회도 국민들께 다시 한 번 재신임을 받을 필요는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헌재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해준다면 국회의원들도 임기 단축을 감내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24일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면서 “필요하다면 여야 국회의원들이 모두 총사퇴하고 총선을 다시 치르자. 어차피 이 정도 내란 상황이라면 국회를 차라리 재구성해서 체제를 정비하고 재출발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남은 국회의원 임기를 반납하고 재선거를 치르자는 것. 민주당 의원들의 국회의원 임기 단축 제안 역시 헌재의 탄핵 인용 선고를 얻어내기 위한 명분 쌓기로 읽힌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들의 임기 단축 입장에 대해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여권 비주류 인사는 25일 “윤 대통령은 한동훈 전 대표가 12.3 계엄 직후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제안했지만 거부한 바 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되고, 헌재에서 인용될 거 같으니까 지금 와서 임기 단축하겠다는 건 신뢰하기 힘든 레토릭(정치적 수사)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실제 탄핵이 기각되면 (윤 대통령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남은 임기를 채우려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민주당 의원들의 임기 단축 언급에 대해 “국회의원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하겠다는 약속을 믿는 대한민국 국민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