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 해빙 물꼬,‘트럼프 압력'역설

2025-03-28 12:59:59 게재

세계 2위-5위 경제대국 간 협력 모색 … 세계경제 지각변동 가능성

중국과 인도는 3500여㎞에 달하는 국경을 접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서로의 등을 기대고 있는 가까운 이웃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양국 사이엔 세계의 지붕인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산맥이 자리하고 있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018년 4월 중국 우한 둥후(東湖)에서 함께 배를 타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에 두나라를 오가기 위해서는 당나라 고승 현장법사가 이용했던 1만여㎞의 중앙아시아 육로를 이용하거나, 신라 승려 혜초처럼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 벵골만을 거치는 해로를 이용해야 했다. 바로 이웃인 두 나라가 인종과 문화, 언어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문명을 발전시킨 이유다.

중국과 인도는 황하문명과 인더스 문명을 각각 낳았다. 17세기에는 양국의 부가 세계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두 나라에서 생산한 실크와 도자기 차 가구 향신료 등이 육로인 실크로드와 해로인 스파이스루트를 통해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저명한 경제 역사학자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는 19세기 말까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대국이었다.

중국과 인도는 한 세기 동안 긴 겨울잠을 잤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두 나라가 역사적 위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와 포브스 등에서 활약한 베테랑 저널리스트인 로빈 메레디스는 저서 '마오를 이긴 중국, 간디를 넘은 인도'에서 “중국과 인도의 움직임이 전 세계 지정학과 경제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수십년 내에 우리는 미국 인도 중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공유하는 삼극 세계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고했다. 메레디스의 이런 예고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각각 세계2위와 세계5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각각 세계경제의 16.0%와 3.3%를 차지했다. 두 나라 GDP를 합치면 미국의 GDP(26.3%)에 이은 두번째 규모다.

두 나라는 세계 1~2위를 다투는 인구대국이다. 유엔인구기금(UNPFA)의 ‘2023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인구는 14억2860만 명으로 1위, 중국은 14억2570만 명으로 2위를 기록했다. 두나라 인구를 합치면 세계 인구(81억명)의 35%에 달한다.

이런 중국과 인도가 손을 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무차별적인 통상압박이 가중되는 가운데 중국과 인도 간 해빙무드가 주목을 받고 있다. G2(주요2개국)의 한 축인 ‘붉은 용’ 중국과 세계경제 5위로 떠오른 ‘흰 코끼리’ 인도의 화해는 과연 ‘흰머리 독수리’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모디총리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

인도가 먼저 화해신호를 보냈다. 로이터통신의 17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미국 과학자 렉스 프리드먼과의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인도와 중국은 2020년 국경 분쟁 지역에서의 군사적 갈등을 겪기 이전 상태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는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면서 “양국 간 경쟁이 건강해야 하며 갈등으로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화답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용과 코끼리의 협력적인 2인조를 실현하는 것이 중국과 인도에 있어 유일한 올바른 선택”이라며 “중국은 인도와 협력해 지도자들의 합의 사항을 완전히 이행하고, 수교 75주년을 다양한 분야와 수준에서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키는 기회로 삼음으로써 중국-인도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촉진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두 나라는 지난 70여년 간 서로 으르렁거리며 지냈다. 1962년에는 국경 갈등으로 전쟁까지 치렀다. 2020년에는 인도 북부 라다크 지역에서 이른바 ‘몽둥이 충돌’로 양측 군인 수십명이 사망했다. 두 나라는 지금까지 국경선을 확정하지 못한 채 3500여㎞에 이르는 실질통제선(LAC)을 사이에 두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해빙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모디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만나 양국 군이 분쟁지에서 철군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두 나라는 여객기 직항로 운항과 비자 발급 간소화 등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24일 '불확실한 지정학 속 인도-중국 해빙을 바라는 모디총리' 라는 분석기사를 실었다. BBC는 최근 중국과 인도간 해빙을 놀라운 일로 받아들이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내렸다.

“최근 양국 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모디 총리가 더욱 긴밀한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각만큼 큰 도약이 아니다. 양국 관계는 여전히 긴장된 상태다. 진정한 화해를 누리려면 양자 관계는 물론 더 나아가 지정학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풀어야 할 과제는 첩첩이다. 중국은 인도-파키스탄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에 대한 인도의 정책에 반대한다. 중국은 또한 인도가 원자력공급국그룹(NSG)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을 막고 있다.

인도는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대중국 안보협의체인 ‘쿼드’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는 또한 중국의 신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이니셔티브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인도는 대만과의 유대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이런 껄끄러운 관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인도는 왜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걸까?

첫째는 트럼프 통상압박에 대한 대비다. 인도는 미국에 비해 평균 10% 정도의 관세를 더 매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라도 인도에 관세카드를 들이밀 수 있다. 인도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 중국과의 무역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더군다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서도 베이징과의 긴장을 완화하려 하고 있다. BBC는 “델리(인도)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어느 순간 인도를 돕는 데 전념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면서 “인도는 그 경우를 대비해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통상압박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는 중국-인도간 경제적 보완이다. 중국은 하드웨어에 강한 반면, 인도는 소프트웨어에 강하다. BBC는 “상호 투자가 늘어나면 인도는 경제적 활력을 얻을 수 있고,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경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연간 850억달러(약124조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인도는 중국의 투자를 끌어들임으로써 무역 적자를 완화할 수 있다. 중국은 인구 14억명의 인도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얻게 된다.

셋째는 지정학적 이해관계다. 두 나라는 모두 개발도상국 연합인 브릭스(BRICS)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의 주축 회원국이다. 비서구적 경제 모델을 발전시키고, 이슬람 테러리즘에 맞서는 데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모디 총리와 시 주석은 올해 여러 차례 만날 예정이다. 오는 7월 브라질에서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리고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G20 정상회의와 올해 말 상하이 협력 그룹(SCO) 정상회의 등이 예정돼 있다. BBC는 “모디 총리와 시 주석은 모두 개인 외교를 중시한다”면서 “올해 회동을 갖는다면 최근 양국 관계의 모멘텀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영원한 동맹도 친구도 없다”

수십년 동안 앙앙불락 다퉈온 중국과 인도가 손을 잡고 있다. 대영제국 전성기를 이끈 헨리 존 템플 전 영국 총리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템플 총리는 “우리에겐 오로지 이익만 있을 뿐이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가장 큰 무역 파트너인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는 금이 간 지 여러 해다. ‘숭미 외교’라는 비난까지 들어가며 공을 들인 미국은 우리를 ‘민감국가’로 지정하고 통상압박까지 가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퍼주다시피 한 일본은 독도문제나 과거사 문제 등에서 여전히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있다. 그렇게 통상외교를 망친 장본인이 내란까지 일으켰다. 온 나라가 내란 속에 허우적거리는 꼴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