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형 거국체제’의 명과 암

2025-12-17 13:00:02 게재

대미 무역전쟁 판정승에 결정적 기여…집권 연장, 정치적 불확실성 키워

2025년, 그리고 미래의 중국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거국체제’이다. 간단히 말하면, 국가가 자원을 집중해 국가의 핵심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을 갖춘 거버넌스 체제다. 중국공산당은 2010년대 중반부터 핵심 기술의 돌파를 위한 ‘신형 거국체제’ 구축을 과학기술 영역의 주요 과제로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 방침은 5개년 발전계획이나 공산당 당대회 보고에서 반복해서 강조되었다. 그렇지만 거국체제는 과학기술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정치 영역까지 포괄한다. 신형 거국체제는 ‘국가 역량을 집중해 큰 일을 완수하는’ 사회주의정치체제의 장점을 시장경제라는 환경하에서 더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거국체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당연히 독재를 합리화하는 논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자원 분배의 왜곡과 잘못된 정책으로 중국의 발전과 안정을 해칠 가능성은 중국의 미래전망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거국체제와 같은 권위주의 체제의 변화가 없이는 지속적 성장, 특히 혁신적 성장은 불가능하고 결국 쇠퇴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2025년에 중국의 거국체제는 어느 때보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무엇보다 치열한 미중 전략경쟁에서 트럼프정부의 강한 압박을 견디고 미국의 중국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은 효과적인 협상전략 수립, 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원동원, 일관성 있고 인내심을 갖춘 협상단 구성 등으로 미중무역전쟁에서 판정승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5년 10월 30일 부산 김해국제공항 옆 김해 공군 기지에서 회담을 마치고 악수하며 대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은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무역 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을 모색하며 10월 30일 6년 만에 첫 대면 회담을 시작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기술제재에도 기술적 혁신 이뤄

과학기술 영역에서 미국의 대중 기술제재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에서의 기술적 혁신을 이루어내고 있다. 이로 인해 트럼프 정부는 입장을 바꿔 엔비디아의 고급 사양 AI칩(H200)의 대중 수출을 허용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부동산 거품 붕괴, 미국의 대중관세 인상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대체로 목표를 달성해왔다. 12월 10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주요 국가 경제성장률 전망치에서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10월의 4.8%에서 5.0%로 상향되었다. 올해도 5% 안팎으로 제시된 성장률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이다.

이러한 성과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공산당의 자화자찬만은 아니다. 중국 체제에 대해 비판적 태도로 일관해 온 뉴욕타임즈와 같은 미국 내 주류 언론에서도 중국이 과학기술 영역이나 미중무역협상에서 거국체제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평론이 실렸다.

토마스 프리드만은 ‘중국제조 2025’ 계획이 21세기 경제성장을 이끌 동력을 미리 파악하고 이 동력을 구성하는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함으로써 중국 기업들이 국내외에서 주도적 지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했고(‘I have never been more afraid for my country’s future', 2025.4.15.), 데이비드 브룩스는 21세기로 들어선 이래 중국은 계획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지식과 혁신의 활력을 보여주어 왔으나 미국은 거의 속수무책이었다고 평가했다('Trump is winning bottom to the race', 2025.7.17.)

이처럼 중국 체제의 긍정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게 된 데에는 트럼프를 비판하려는 의도도 작용했다. 그러나 중국이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시진핑체제가 출범한 이후의 정치 변화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2025년으로 14차 5개년 계획을 완료하고 2026년 15차 5개년 계획을 시작하는, 더 중요하게는 2027년 가을 시진핑의 네 번째 연임 여부를 결정할 21차 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중국 지도부에게는 큰 선물이다.

내수주도 성장 전환엔 취약점 드러내

거국체제의 구축과 실행에 긍정적 면만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성장방식 전환, 특히 내수주도 성장으로의 전환이라는 면에서 거국체제가 보여준 것은 거의 없다. 중국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은 1990년대 후반부터 내수 진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무역전쟁이라는 복합적 위기에 직면했던 2020년 5월에는 국내대순환을 중심으로 하는 쌍순환 성장전략을 제시했다.

2010년대 이후 국가 주도 투자에 과도하게 의존한 성장은 부동산 거품, 과잉생산 등의 부작용을 낳았고 이는 지금까지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수출은 미국 관세 인상 등으로 인한 무역환경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올해 11월까지 전년 대비 3.6% 증가하고 무역흑자는 처음으로 1조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으로는 대중 무역적자에 대한 불만과 우려를 증가시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서구에서는 이미 중국이 과잉생산이라는 내부 문제를 외부로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앞으로 투자나 수출이 성장을 뒷받침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미다. 올해도 1년 성장 목표는 달성하겠지만, 분기별 성장률은 5.4%, 5.2%, 4.8% 등으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경제성장에서 내수의 기여도를 높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이유이다.

그런데 현재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후반보다 크게 낮아졌다. 35%대로 하락했던 2010년대 초반에 비해 소폭 상승했으나 최근 10년 동안 39%에 머무르고 있다. 65%를 넘는 미국, 55%에 가까운 일본과 상당한 격차가 있다. 이 문제는 첨단 산업이나 기술 영역의 돌파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내수주도 성장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민간 부분의 활력을 높여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요구가 거국체제와 상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12월 10~11일 사이에 진행된 공산당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2026년 첫째 과제로 내수 주도 방침의 견지를 제시했으나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현실적으로 구체적 목표를 제시한 과학기술 영역에 투자가 더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정권 핵심부 불확실성 높아진 것도 문제

거국체제의 또 다른 문제는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핵심부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시진핑의 임기가 길어질수록 그 핵심부의 불확실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작년과 올해 중국 정치의 표면적 안정 이면에서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외교부장 국방부장 등 주요 고위직이 부패 등으로 낙마하는 과정이 석연치 않고, 이들이 낙마한 자리에 새로운 인사를 발탁하는 작업도 순조롭지 않다.

시진핑과 공산당의 관리가 체계적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체제를 운영하는 주요 고리가 부실해지면 체제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정치적 세대교체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중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도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국체제의 장점은 소진되고 단점이 더 두드러지게 된다.

거국체제 피로감 해소할 방안은

따라서 공산당 지도부가 거국체제의 단점을 해소하거나 관리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코로나19, 미국의 대중압박 등의 국내외적 위기 상황이 거국체제의 수용성을 높였다. 그러나 그동안 거국체제에 대한 피로도도 증가했다. 중국인들에게는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고통스러운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만약 국가 운영 차원에서 거둔 성과를 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으로 이어가지 못하면 거국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이제는 거버넌스의 유연화를 통해 대내적으로는 민간사회의 활력을 높이고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

미중관계 안정화는 공산당이 거국체제라는 거버넌스 내에 사회의 자발성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시진핑의 임기 연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하고, 그 결과 정치적 불확실성은 높아지고 사회의 활력은 떨어질 수 있다.

중국이 어느 길을 걸을지가 2026년은 물론이고 중장기적으로 중국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되고 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 비평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