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이제는 헌법에 충성하는 경찰을 보유하자

2025-12-17 13:00:02 게재

대한민국 경찰은 역사적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탱해 온 충성스러운 조직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촉발한 국가적 혼란은 경찰이 더 이상 단순한 질서유지 기관이 아니라 헌법수호의 최전선에 투입된 용기 있는 시민이어야 함을 새삼 확인시켰다.

위기의 순간마다 국민이 기댈 곳은 헌법의 가치로 판단하는 경찰, 인권을 가장 우선하는 경찰이다. 이제 경찰 스스로가 이 정체성을 분명히 선언할 때가 왔다. 경찰은 단순한 법 집행자가 아니라 헌법의 수호자로서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사명을 띠고 있다고.

세계 각국의 경험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미국은 흑인 인권운동의 불씨를 다시 지핀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경찰개혁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다. 강력한 단속보다 인권 중심의 대응이 국민안전을 더 강하게 보장한다는 연구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독일 헌법도 기본권은 입법 행정 사법의 국가기관을 구속한다고 명시함으로 경찰권 발동의 모든 과정이 헌법적 정당성 평가를 받게 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경찰 스스로가 헌법과 인권을 우선한다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을 때 시민의 협력이 뒤따르고, 공동체와의 협력이 강해질수록 치안 역시 강화된다는 것은 보여준다.

경찰의 현장 판단의 기준은 헌법

우리도 세월호 사태 이후 재난 구조 활동의 체계와 국가의 책임이 재정의 되었고, 대통령 탄핵의 시간에 집회·시위 등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에서 경찰의 인권 보장 중심의 접근이 사회적 갈등을 줄였다는 경험이 쌓여 있다.

인권을 법 집행의 ‘장애물’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을 때 공권력은 정당해지고 강해진다. 헌법 제10조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은 경찰의 가장 구체적인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현장의 판단이 헌법정신에 근거해야만 경찰은 주권자인 국민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경찰도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경찰이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도록 하려면 이들의 근무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일부터 선행돼야 한다.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량은 경찰을 약한 사람에게 더욱 쉽게 권한을 행사하도록 만들고, 자신의 판단을 ‘헌법의 언어’가 아니라 ‘시간에 쫓긴 선택’으로 왜곡하고 합리화하게 한다.장시간 근무와 만성적 피로가 경찰의 과잉대응 위험을 크게 높인다는 연구결과는 인력 재배치, 심리 지원, 인권 중심의 평가체계 도입을 통해 현장 대응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경찰이 헌법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전면 재설계하고, ‘현장 운용 매뉴얼’을 재정비해야 한다. 더 많이 단속하는 경찰이 아니라 더 헌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경찰을 만드는 것이 경찰개혁이다.

행정부가 경찰을 감독하는 구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영국과 캐나다는 외부 조사·감독 체계를 통해 정치세력의 단기 이익으로부터 경찰을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외부의 독립적 감독기구를 통해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난 경찰을 설계해 국민 신뢰도를 크게 높였다. 이를 통해 경찰이 정권이 아니라 국민을 향해 책임지도록 바꾸었다.

정치적 간섭을 차단하는 구조가 없다면 경찰은 권력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이제 없다. 지금 필요한 건 경찰을 통제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국민에게만 책임지는 경찰을 만들고 이를 지켜내기 위한 변화와 혁신이다.

미래 치안환경에서도 이러한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인공지능(AI) 등 첨단과학이 치안의 도구가 될수록 인권침해 가능성은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기구들은 과학기술을 통한 시민 감시 강화에 대해 잇달아 경고하고 있다. 과학기술 도입의 전제조건으로 투명성, 인권영향평가 등을 요구한다. 과학기술은 치안을 효율화할 수 있지만 헌법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국가 전체를 뒤흔드는 또 다른 위험이 된다. 학계와 경찰청은 치안 과학기술을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방향으로 사용할 기준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경찰이 미래세대에도 자부심으로 남으려면

우리는 어떤 경찰을 보유한 나라가 될 것인가. 국가가 흔들릴 때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당당히 설 수 있는 경찰, 불법을 넘어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경찰, 정치적 파도 속에서도 오직 헌법을 최후의 행동 기준으로 삼는 경찰이다. 이 길을 선택하는 순간 대한민국 경찰은 과거를 넘어 미래세대에게도 자부심으로 남을 것이다. 헌법에 충성하는 경찰, 그것이 대한민국이 반드시 보유해야 할 경찰이다.

이상훈 대전대 교수 전 한국경찰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