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회계처리 오류 잇따라 “자본시장 신뢰 훼손”
5조7천억원 정정한 한국투자에 이어 신한투자도 4천억원 수정
리테일·FX 해외주식 환전 내부거래 과대계상…환율 적용 착오
최근 증권사들의 회계처리 오류가 잇따르면서 자본시장 신뢰가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투자증권이 최근 5년간 사업보고서를 무더기로 정정하면서 약 5조7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과대 계상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신한투자증권도 작년 반기 보고서와 3분기 보고서를 수정 공시했다. 해당 증권사들은 매출과 비용이 모두 같은 값으로 수정돼 당기순이익은 변동이 없으며, 고의성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숫자를 다루고, 투자자들의 자금을 관리하는 증권사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내부 외화거래 중 원화 기입 착오” =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은 26일 2024년도 2분기와 3분기 보고서 정정 공시를 하면서 외환거래이익(영업수익) 및 외환거래손실(영업비용) 상계 조정에 따른 손익계산서를 수정했다. 이에 따라 신한투자증권의 외환거래 이익은 4553억원 줄었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내부 외화거래 중 원화 기입 착오로 차익이 과대계상 됐다”며 “외환거래는 환율 적용이 복잡해서 회계처리 착오가 가끔 발생하는데 이를 바로 잡으려고 정정 공시를 냈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한국투자증권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사업보고서를 수정 공시했다. 이 기간 연결재무제표에서 내부 외환거래를 상계 처리하지 않으면서 매출과 비용을 모두 부풀렸기 때문이다. 5년간 실제보다 과대 계상된 금액은 약 5조7000억원이 넘는다. 해외주식 거래 시장점유율(MS)이 늘어나기 시작한 2022~2023년에는 한 해 수정 금액은 2조원이 넘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증권사 리테일부서에서 해외주식을 거래할 때 FX부서에서 외국통화와 원화간 환전 거래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양쪽 모두 매출로 과대 계상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며 “부서 간에 주고 받는 매출과 비용은 상계처리를 해야 하는데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서 매출이 이중으로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영업 부문 수익이 줄어들면서 영업비용도 같이 줄어 영업이익과 순이익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내부통제 실패 ‘사실상 분식회계’ = 금융투자업계와 회계업계에서는 이번 사안들에 대해 “내부통제 실패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건으로 고의성이 없었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분식회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자본시장의 신뢰를 책임지는 금융기관이 수조원에 달하는 회계 오류를 단순 실수로 치부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실상 분식이라는 의심이 드는 이유는 순이익과 상관없이 매출 규모가 커지면 기업의 가치(밸류에이션)가 달라지기 때문”이라며 “이는 투자자들을 속인 셈이 되는 데 이런 중요한 사실을 증권사가 모를 리 없다”고 꼬집었다.
투자자들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해 볼 필요도 있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증권사들의 회계처리에 고의성이 있었는지 실수인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더 중요한 것은 투자자들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5년간 보고서 정정 공시의 경우엔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재무제표 수정으로 매출이 대규모로 줄어들어 금융감독원이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금감원 회계 심사 착수 가능성 높아 = 실제 금감원의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회계 심사 착수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5년 동안 동일하게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된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향후 검사를 나가서 필요하면 제재도 할 것”이라며 “회계 심사에 착수해 중대한 위반이 발견되면 감리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와 같이 외환거래 회계 처리를 잘못하는 증권사들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증권사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회계처리 내부통제에 대한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해외주식투자가 증가하면서 외환부서와의 내부거래 규모도 커지고 있다”며 “그런데도 여전히 내부 외환거래수익과 비용 상계처리를 수기로 처리하는 곳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과 같은 회계처리 오류가 다른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관계자들은 “최근 한투증권 정정 공시 이후 증권사 전체 상황을 유선상으로 파악본 결과 다른 곳은 문제가 없었다”며 “다만 다른 증권사에 이와 비슷한 오류가 완전히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영숙·이경기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