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이근명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보도,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

2025-04-08 13:00:02 게재

2009년 6월 1일, 228명의 탑승객을 태운 에어프랑스 447편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파리로 향하고 있었다. 대서양 상공을 순항하던 기체는 돌연 레이더에서 사라졌고 행방이 묘연해졌다. 사고 원인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쏟아졌고, 여러 언론에서는 벼락, 폭풍과 난기류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일부 언론들은 사고지점이 버뮤다 삼각지대 인근이라는 점을 들어 미스터리한 현상이 발생했음을 암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서양 해저에서 기체 잔해가 발견되고, BEA(프랑스 항공사고조사위원회)의 정밀 조사 후 밝혀진 사고의 진상은 여러 매체가 지목했던 원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항공기 속도를 감지하는 피토관(pitot tube)의 결빙 상황에서 조종사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밝혀진 것이다.

최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사고에서도 여러 매체가 사고 발생의 최초 원인은 조류 충돌에 있으나 참사를 키운 원인은 활주로 끝에 위치한 방위각 안테나를 지지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 사고는 기체 결함, 정비 문제, 조종사 과실, 공항 환경 등 다양한 요소가 개입되어 있고, 이러한 요소들을 분석하는데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에, 제한적 정보만을 통해 지목된 원인과 실제 정밀조사 결과 밝혀진 원인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항공사고조사위원회는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발표된 예비보고서에 따르면, 항공기에 장착된 비행자료기록장치(FDR)와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는 충돌 전 약 4분 동안 기록이 중단된 상태였다. 이는 향후 조사가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조사위는 조류 충돌, 엔진분해검사, FDR/CVR 자료 분석, 관제자료, 부품 정밀검사, 방위각 시설물 등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고, 필요할 경우 NTSB(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 및 BEA와 합동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다소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정밀조사를 통해 사고의 원인이 규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공식적인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원인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실체적 진실과는 다른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여 사고조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항공사, 항공기 제조업체, 공항 당국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는 특히 예단을 형성하지 않고 사고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BEA가 에어프랑스 447편의 사고 발생 직후인 2009년 6월 5일 보도자료 통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기반으로 한 성급한 해석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 것도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과 책임 있는 자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유사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으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명확하게 가려지고,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

무안공항 사고가 발생한 지 100여일이 되었다. 사고 이후 수많은 보도가 쏟아졌고,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항공 안전은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얻은 결과를 항공 안전 시스템에 반영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사고의 원인을 정확하고 철저하게 규명하고 그 결과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져서 이번 사고가 남긴 아픔이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근명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