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관세폭탄-중 과잉공급에 낀 전세계

2025-04-09 13:00:04 게재

전문가들 ‘팔기만 하는 중국도 큰 문제’ … 중국 성장모델 대대적 재편 필요하다는 지적

세계 양대 경제대국 간 전면적인 무역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중국이 지난주 발표한 보복관세 34%를 철회하지 않으면 추가적으로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자, 중국은 8일 “미국이 관세인상을 강행할 경우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8일 중국 홍콩항 콰이칭 화물터미널에 수출용 컨테이너가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마주오는 열차처럼 전면 충돌을 불사함에 따라 전세계 각국의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고율관세도 문제지만, 미국에 다다르지 못하는 중국의 과잉생산·과잉공급이 전세계 나머지 국가들로 흘러들어갈 걱정도 덩달아 커지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액은 5250억달러에 달했다. 또 2023년 기준 중국은 전세계 제조품의 약 30%를 생산하고 있지만, 소비비중은 13%에 불과하다. 중국은 수년 전부터 투자 주도 성장모델에서 벗어나 소비 중심 경제로 재편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같은 불균형은 지속되고 있다.

대미 수출분, 전세계에 쏟아낼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 “미국의 고율관세가 글로벌 무역을 교란하는 와중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이 중국 리창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의 저렴한 제품이 EU에 과잉공급될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EU집행위는 이날 성명에서 “폰데어 라이엔 위원장은 글로벌 경제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시장인 유럽과 중국이 자유롭고 공정하며 공평한 경쟁의 장을 기반으로 무역시스템 개혁에 나서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집행위는 또 “폰데어 라이엔 위원장은 이미 글로벌 과잉생산으로 타격을 입은 부문을 포함해 미국발 관세로 중국 무역이 우회하는 문제를 중국정부가 대처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유럽과 중국은 무역 우회문제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설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8일 ‘트럼프 관세와 중국의 반격으로 115조달러 세계경제가 충격에 빠졌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의 추가관세와 중국의 보복관세, 미국의 또 다른 추가관세 등으로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며 “중국은 트럼프 1기의 첫번째 무역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잃게 될 시장을 대체하기 위해 수출 대부분을 다른 나라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갇혔다”고 전했다. 즉 트럼프 관세폭탄이 중국발 과잉공급 쇼크를 증폭시켜 전세계 각국에 보호주의의 물결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교수로 국제통상 전문가인 리처드 볼드윈은 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주최 ‘세계화 현황’ 회의에서 “미국발 충격은 더 심각한 중국발 충격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전세계 다른 주요 국가들도 중국에 대한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아주 확실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관세가 유지되고 대상 국가들이 미국 수출품 절반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시나리오의 경우 2030년까지 미국이 전세계 나라들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은 약 30% 감소한다. 중국의 대미 수출은 약 85% 감소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미 수출은 50% 이상, EU와 인도의 대미 수출은 거의 40%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10%의 낮은 관세가 부과되는 영국과 브라질의 대미 수출은 15%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이외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량은 5% 미만 증가할 전망이다.

아시아개발은행 수석경제학자인 앨버트 파크는 “트럼프의 관세 폭과 범위가 중국 공급과잉보다 세계경제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하지만, 그같은 역학관계의 결합은 미중 사이에 낀 국가들에 부담을 줄 것”이라며 “다른 많은 국가들이 미국 관세인상에 대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 수출품을 더 많이 흡수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1970년대 개방을 시작한 이래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했다. 160개국 이상에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체들은 전기차와 풍력터빈, 배터리, 기타 첨단기술 제품 등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하며 적극적으로 새로운 수출시장을 찾고 있다.

관세폭탄으로 증폭된 과잉공급 쇼크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런 추세를 크게 부추겼다. 다른 나라들이 질병 확산과 생산능력 부족으로 생산량 증대에 어려움을 겪던 2021년, 중국 수출은 30% 증가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전세계 생산기업들을 약화시키고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면서 반발이 점점 커지고 있다.

싱가포르 경영대 법학교수로 중국무역정책 전문가인 헨리 가오는 “트럼프 관세가 더 충격적일 수 있지만, 세계경제에 더 중요한 건 중국의 제조업 지배력 확대”라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에 봤듯 트럼프 충격은 단기적인 변동성과 혼란을 수반하는 즉각적인 고통을 가져온다. 반면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세계경제질서에 가하는 위협은 근본적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넬대 국제무역정책 교수인 에스와르 프라사드도 “중국의 내수 부진과 과잉 공급은 세계경제의 뿌리 깊은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 미국 관세는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랜드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인 쥬드 블랑세는 “미중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유럽은 미국에서의 수출감소분을 만회하려는 중국 수출기업들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은 점차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 수출 총액은 1170억달러에 달했다. 5년 만에 600% 이상 증가했다. 이에 EU는 지난해 중국에서 수입되는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비야디(BYD)의 글로벌 매출은 1000억달러를 넘어 테슬라를 제쳤다. 유럽과 싱가포르 태국, 호주 등 여러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미국은 징벌적 관세를 통해 BYD의 시장진입을 막고 있다.

중, 내수 살리면 전세계 구원자 될 수도

그렇다면 트럼프 관세로 미국 수요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세계경제에 위협이 아닌 구원자가 될 수도 있을까. 현재 중국은 전세계를 상대로 1조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나라다. 내수를 늘린다면 미국 소비자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아직 먼 이야기다. 지난해 간신히 성장한 중국의 수입액은 올해 들어 8% 이상 감소했다.

HSBC 아시아 수석경제학자 프레데릭 노이만은 “의미 있는 방식으로 소비를 늘리려면 중국 성장모델의 대대적인 재편이 필요하다. 이는 경제적 정치적 이념적으로 엄청난 일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성공한다면 자유무역과 관련한 세계질서를 유지시키고 미국의 경제리더십을 인계받을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관세폭탄은 중국이 다시 한번 신뢰할 수 있는 경제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시진핑 주석은 이달중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미국 관세로 큰 타격을 입은 3개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인 에드워드 올덴은 “중국이 이 상황에서 큰 승자가 될 수 있다. 전세계 국가들이 현 상황을 지켜보며 ‘이제 누구와 거래를 해야 할까. 미국은 예측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중국은 상대적으로 선량한 세계시민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8일 “중국의 전략적 대응이 미국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며 “중국은 세계무역의 수호자로서 전세계 국가들과의 무역장벽을 낮추기 위해 신속히 행동해야 한다. 철강과 배터리, 태양광패널 등 보조금을 받는 제품을 전세계에 과잉공급할 의도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또 “내수 진작과 관련해 보수적인 저축자를 열정적인 소비자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중국 부동산시장이 아직 바닥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미국이 산업제조강국으로 거듭나는 것보다 더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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