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협상 ‘맞춤형 전략’지시
“한국·일본 등 동맹이 우선 순위” … 군사·외교까지 포괄하는 "원스톱 쇼핑”
백악관은 8일(현지시간) 브리핑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협상이 각국의 시장 규모, 미국과의 교역량, 무역적자 수준 등을 반영해 독특하게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 지침은 상대국의 무역 태도와 미국에 대한 기여도 등을 바탕으로 관세 수준과 협상 조건을 달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현재 약 70개 국가가 미국과의 협상을 요청하고 있다”며 “이들 대부분은 미국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비관세 장벽으로 미국 기업의 시장 접근을 제한해왔다. 이 때문에 미국은 정당한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최고의 제안을 갖고 오면 언제든지 들을 준비가 돼 있다. 다만 협상은 미국 노동자와 산업에 이익이 되고, 심각한 무역적자 해소에 기여할 때만 타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특히 한국과 일본을 협상의 최우선 대상국으로 설정했다.
케빈 해싯 국가경제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이 가장 중요한 동맹이자 교역 파트너라고 보고 있다. 그는 이들 국가와 먼저 협상하라고 분명히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로 많은 양보가 이뤄졌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과의 마찰은 갈수록 격화하는 양상이다. 미국은 중국이 보복관세를 철회하지 않자, 4월 9일부터 최대 104%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키로 했다. 이는 기존의 ‘10%+10%’ 조치에 이어 추가된 34% 상호관세, 그리고 50% 보복 대응 관세까지 포함한 수치다. 레빗 대변인은 “보복은 중국의 실수이며, 미국은 언제든 더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협상의 문은 아직 열려 있다. 레빗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대화할 의사가 있으며, 중국이 협상을 요청할 경우 관대하게 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미국 국민과 산업에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역 정책은 단순한 관세 조치를 넘어 군사, 외교 이슈까지 포괄하는 ‘종합 패키지’로 확장되고 있다.
백악관은 “이번 무역 협상은 원스톱 쇼핑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며, 해외 원조, 주둔 미군의 방위비 분담 문제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단순히 무역 불균형 문제를 넘어 미국의 대외 정책 전반을 재조정하려는 시도로 읽히는 대목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같은 날 상원 청문회에서 “각국이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는 관세 외 대안을 제시한다면 협상할 수 있다”며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관세 면제나 예외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관세 정책에 예외를 두면 ‘스위스 치즈’처럼 허점이 생겨 전체 정책 목표가 약화된다”고 주장했다.
그리어 대표는 일본과의 협상도 언급하며 “순수한 무역 외에도 에너지 자원 수입, 투자 제한, 수출통제 등 경제 안보 분야에서도 협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이 트럼프 1기 당시 합의한 무역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시정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리어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때 동맹인 멕시코, 캐나다, 한국과 협상한 무역 합의를 지키지 않고 관세를 부과했는데 왜 다른 나라가 미국과 무역 합의를 협상하려고 하겠느냐는 지적에 “이들 국가는 미국에 (제품을) 판매해야 한다. 다수 국가,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자기 경제 전체의 기반을 대미 수출에 두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이 동맹이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호주에도 관세를 부과한 이유에 대해서는 “호주는 협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관세를 무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략은 단기적 면제보다는 장기적 이익, 그리고 철저한 상호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미국은 자국산 제품에 높은 장벽을 설치한 국가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고, 자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협상은 빠르게 진행하지만, 결과 중심이라는 점에서 인위적 일정을 두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