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금융 쇼크…'붕괴 악순환' 어디서 시작?

2025-04-09 13:00:09 게재

증시·금값·회사채 급락에 마진콜 폭탄

변동성 확대 속 연쇄 디폴트 우려 확산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트레이더가 주가 추이를 지켜보며 통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급락장은 투자자들이 얼마나 빨리 공포에 굴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장 무서운 건 매도에 나선 사람들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최대 규모의 관세 부과를 발표한 이후 전 세계 주가가 폭락했다.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상대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낸 후 신속하게 관세를 낮출거란 희망을 품었지만, 트럼프는 7일 오히려 시진핑 주석이 보복 관세를 철회하지 않으면 중국에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태가 이렇게 흐르자 가격 변동폭이 클수록 변동 자체가 손실을 초래할 수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가격이 요동치면서 패밀리 오피스(부유층의 자산 관리를 위한 사설 금융기관) ‘아르케고스’가 무너져 은행들이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듬해엔 영국 국채 가격이 크게 하락해 국채에 레버리지(파생상품을 이용한 포지션 확대) 투자했던 연기금들이 대규모 손실을 입으면서 유동성 위기로 번졌고,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개입해 시장을 안정화시켜야 했다.

두 경우 모두 갑작스러운 시장 움직임에 따라 기관들이 손실을 보고 있는 포지션에 대해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입 요구)을 받게 했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서둘러 자산을 매각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더 혼란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지금도 이와 같은 파탄의 순환 고리가 현실로 나타날까.

이와 관련,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불길한 징후들이 여럿 존재한다고 7일 지적했다.

우선 여러 월가 은행들이 헤지펀드 고객들에게 2020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마진콜을 보냈다는 지난 5일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가 있다.

이에 더해 미국 주가는 4일부터 3거래일 연속으로 글로벌 팬데믹 때만큼이나 급속도로 폭락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3거래일 동안 금 가격마저 급락했다. 금은 일반적으로 재앙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금값 급락은 거래자들이 마진콜을 충족하기 위해 가장 유동적인 자산을 처분하는 투매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7일에는 또다른 안전 자산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가격도 하락했다.

또 다른 징후는 향후 한달 동안 금융시장의 예상 변동성 지표들이 급등한 점이다. 이 지표들은 투자자들이 주가와 채권 수익률, 환율의 큰 변동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불하는 보험료와 유사하다.

특히 미국 주가 변동성을 예상하는 VIX(변동성지수)는 최근 3거래일간 급등해 7일 60으로 고점을 찍었다.

금융기관의 위험 관리자(risk manager)들은 이런 움직임을 보고 투자손실을 제한하기 위해 트레이더들에게 가장 위험한 포지션을 정리하도록 지시한다. 다수의 은행과 헤지펀드, 자산운용사들이 동시에 포지션을 매도한다면 시장은 더 큰 변동성에 휘말리게 된다.

회사채 시장 또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투자자들이 기업의 채무 불이행 가능성을 높게 책정하면서 차입 비용이 급등했다.

미국의 고위험 사채인 일명 ‘정크 본드’ 발행자가 국채 금리 이상으로 지불하는 평균 이율은 2월 중순 2.6%에서 4월 4.5%로 상승했다.

현재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CCC’ 이하 기업의 경우 무려 11%에 달한다. 만기가 임박한 부채를 안은 기업은 이같은 고금리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압박은 지출과 투자 능력을 위축시켜 경기 둔화는 물론 연쇄적 채무 불이행으로 이어질 위험을 키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중앙은행들이 경제 성장에 대한 타격을 상쇄하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하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4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더 기다릴 것”임을 시사했다.

소비자와 시장 참여자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너무 빨리 금리를 인하하면 통제 불능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파월 의장은 통화 완화 정책을 주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투자자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고 짚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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