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트럼프 관세에 ‘환율 무기’ 꺼냈다

2025-04-09 13:00:10 게재

달러당 7.20위안 붕괴시켜 수출 방어용 평가절하 개시

"10% 절하땐 글로벌 충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20%+34%+50% 관세’ 부과를 추진하자 중국이 위안화 기준 환욜을 1달러당 7.20위안 바로 아래로 내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간) 중국이 트럼프의 공세에 맞서 “위안화 절하를 통한 대응 수단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자국 수출 기업 보호를 위해 ‘환율 무기’를 꺼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이날 중국 인민은행은 위안화의 기준 환율을 1달러당 7.2038위안(약 1452원)으로, 전날(7.1980위안)보다 더 내려 고시했다. 이는 18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중국 당국이 수년간 방어해온 상징적 선을 사실상 처음으로 허문 셈이다.

이번 조치는 미국 달러화가 주요 통화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온 것이라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앞으로 위안화 환율을 점진적으로 절하하는 방향으로 무역전쟁에 대응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관세 대응 차원에서 미국산 제품에 대해 34%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환율 고시는 그보다 더 정교하면서도 파급력이 큰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고 FT는 짚었다.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미국의 관세 인상 효과를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BNP파리바의 왕쥐 중국환율전략부장은 “시장은 중국이 통화 가치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쪽과, 지금까지 위안화가 견고했다는 점에 주목하는 쪽으로 나뉜다”며 “환율 하락을 얼마나 허용할지는 중국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향후 ‘7.35위안’ 또는 ‘7.50위안’까지 평가절하가 가능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이는 현 수준에서 최대 약 3%의 추가 절하를 의미한다.

문제는 이같은 절하가 다른 국가들의 경쟁적 평가절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아시아계 글로벌 헤지펀드 창업자는 “중국이 위안화를 10~15% 정도 절하한다면 다른 국가들도 줄줄이 따라가게 될 것”이라며 “이런 환율 변동성 하에서는 기업들이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일단 절하 속도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바클레이즈의 칸하리 싱 아시아 전략 책임자는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급격한 평가절하보다 점진적인 절하와 ‘환율 재설정’이 기본 시나리오”라고 분석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 2018년 트럼프 행정부 1기 관세 부과 당시 위안화를 10% 넘게 평가절하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으로의 수출 우회가 이미 어려운 상황이고, 대외 신인도와 자본유출 우려도 커져 있다.

모건스탠리의 싱 수석 중국 이코노미스트는 “환율 안정, 국민 신뢰 회복, 자본유출 방지가 중국 정부의 또 다른 목표”라며 “당국은 2015년처럼 자초한 자본유출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절하 속도를 철저히 통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평가절하 시도는 단순한 환율 조정이 아니라, 중국이 무역전쟁에서 본격적인 통화 수단을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부른 글로벌 환율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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