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재판관 지명 즉시 철회해야”
헌법학자회의·한국법학교수회 “이완규·함상훈 지명 월권 행위”
“마은혁 재판관·마용주 대법관 임명은 만사지탄이지만 환영”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이달 18일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한 데 대해 법학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다만,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재판관에 임명한 것과 마용주 대법관 후보자를 대법관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서는 늦었지만 환영하는 분위기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학자 100여명으로 구성된 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공동대표 김선택.이헌환.전광석 교수)는 전날 “마용주 대법관과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은 지극히 당연한 헌법상 의무의 이행으로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한다”면서도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은 권한대행이 할 수 없는 월권·위헌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법 제6조에 따르면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헌법학자회의는 특히 이번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이 대통령 선거 절차가 개시된 이후 내려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헌법 제68조 제2항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헌법분쟁에 관한 최종적 결정권을 가진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과 같이 헌정질서에 중차대한 효과를 초래하는 창설적 결정권은 국민의 신임을 받은 새로운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한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설명이다.
헌법학자회의는 “한덕수 권한대행이 단행한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은 새로운 대통령의 권한을 선제적으로 잠탈하는 월권적・위헌적 행위”라며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윤석열 파면 결정 이후 가까스로 회복의 실마리를 마련한 민주공화국 헌정을 또 한 번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므로 그 지명을 즉시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한덕수 대행은 8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18일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12월 말부터 임명을 하지 않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도 단행했다.
아울러 대법원장 제청과 국회 동의 과정을 마친 마용주 대법관 후보자도 대법관으로 임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지명 또는 임명할 수 있는지 헌법이나 법률에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 다만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는 ‘소극적이고 현상 유지적인 권한’에 한정해야 한다는 게 헌법학계의 중론이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도중 퇴임을 맞은 당시 박한철 헌재소장의 후임을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헌재는 결국 ‘8인 체제’에서 최종 결정을 내렸다.
반면 국회나 대법원장 몫의 재판관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는 것은 ‘소극적 권한행사’로 분류된다. 대통령 몫이 아닌 재판관의 경우 대통령의 ‘임명’이 형식적·수동적인 권한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파면 기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 전 국무총리는 박 전 대통령 파면이 결정된 후 이선애 전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전례가 있다. 그러나 이 전 재판관은 대통령이 아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후보자였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을 때 국회 선출 몫인 정계선·조한창 재판관을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한 대행이 처음이다.
한국법학교수회(회장 최봉경 서울대 교수)도 이날 “권한대행의 직무는 국정운영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로 제한되어야 하며,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헌법재판관의 후보자 지명은 권한대행의 직무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한덕수 권한대행의 위헌적인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및 임명을 단호히 거부하며 후보자 지명을 즉시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헌재는 9일 마은혁 재판관이 취임하면서 9인 체제가 완성되지만 10일 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퇴임 이후인 19일부터는 다시 7인 체제가 된다. 한 대행이 지명한 두 재판관 후보자 임명 여부를 두고 정치권을 비롯한 학계에서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