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진의 미국경제 톺아보기
트럼프 관세정책, 미국경제가 위험해지는 이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일 ‘미국 해방의 날’을 선언하며 전 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 발표를 한 다음날, 뉴욕 증시는 코로나 펜데믹 이래 최대 규모로 급락하였다. 트럼프 발(發) 관세전쟁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시작되고, 세계 교역량이 감소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위기감에 주가폭락
영국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스는 트럼프정부 출범 후 올해 미국 인플레이션을 3.7%로 예측한 반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 –0.1%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체이스 역시 상호관세 부과는 미국 인플레이션을 1.5% 이상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하면서 경기침체로 미국 실업률이 5.3%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연간 실질 GDP 성장률 전망은 기존 전망치였던 연 1.3%를 –0.3%로 1.6%나 하향 조정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 경제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극찬했던 JP모건체이스의 진단이기에 이번 발표는 다분히 충격적이다.
돌이켜보건대 미국경제는 지난 한 해 이례적인 호성적을 거두었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더라도 미국 경제는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반도체 산업 등을 중심으로 견조한 기업 수익률과 3%대의 역사적으로 낮은 실업률, 2%대의 안정된 물가상승률로 ‘나홀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잇따른 공격적 관세 부과와 상대 국가로부터의 ‘맞불’ 보복관세가 이어지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우선 상당수의 소비재를 수입에 의존해 온 소비자들은 관세 부과로 인한 상품 가격 상승으로 감당해야 할 가계 부담이 커졌다. 설령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상품이라 할지라도 미국 기업들이 원자재를 해외로부터 수입해야 한다면 늘어난 비용 중 많은 부분이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기에 이 경우에도 소비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2025년 2월 소비자 기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미국 소비자들은 향후 1년간 인플레이션이 3.1%에 이를 것으로 예상해 2024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비슷한 시점에 이루어진 미시간대학의 3월 소비자 심리지수는 57.9를 기록해 2022년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으며, 소비자들은 향후 1년 동안 인플레이션이 무려 4.9%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이렇듯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소비심리는 결과적으로 내수시장의 위축을 가져온다.
기업에도 트럼프정부의 상호 관세 부과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정부효율부’를 이끌고 있지만 트럼프정부 관세 정책에 관해서는 미국 수출 기업들이 상대 국가의 보복관세에 직면할 수 있음을 들어 여러 차례 강력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우선 미국이 상대 국가에 대한 관세율을 높이면 해당 국가 역시 이에 보복하듯 미국이 생산한 제품에 대해 관세를 높이게 된다. 이 경우 미국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두고 해외로 수출하는 업체들은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듯 트럼프 미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및 중국의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발표 직후 테슬라 주가는 10.42% 급락해 시총이 896억달러 이상 줄었다.
상호관세 미국기업에도 부정적 영향
또 다른 관점에서는 아무리 제품 생산 공급망을 미국 내로 유치해 현지화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부품을 미국 내에서 조달하기란 어렵다. 가능하다 해도 생산 원가가 높아져 가격경쟁력이 악화되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생산성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하더라도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특정 부품에 대해서는 국가 간 분업을 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요 측면에서의 내수시장 부진과 공급 측면에서의 생산 원가 상승이 맞물리면 기업으로서는 생존을 위해 고용부터 줄이게 되고, 이는 곧장 실업률 증가로 이어진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가계소득도 줄어 결과적으로 경기가 침체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반면 보복관세로 인한 생산 원가 상승은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총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떨어지지 않는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실업률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상대 국가의 보복관세에도 불구하고 거래 대상이 되는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모두 미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미국 정치의 오랜 전통이기도 한 고립주의에 기초한 생각이다. 미국은 오랜 세월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 자국 내 생산을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인구 등의 장점을 바탕으로 다른 국가들과 교류하지 않고도 잘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트럼프는 그 믿음을 이번 관세정책을 통해 현실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세계 초일류 국가로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된 배경을 곱씹어본다면 이는 환상에 불과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년대~60년대 초반 미국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견실한 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 및 이자율로 연 1~3%대의 안정적인 성장 시대를 구가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연방 지출이 급격히 증가해 수요 측면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1970년대엔 흉작과 오일 쇼크로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미국은 만성적인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설상가상 미소 냉전 시대에 미국이 유럽, 일본 등 경쟁국가들에는 대규모 경제원조를 아끼지 않았던 반면, 정작 미국 제조업에 대한 기술 투자는 인색했다. 이는 1980년대 초까지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았다. 포드 대통령이 취임한 1974년 미국 국민총소득(GNP)은 연율로 4.2% 감소했다. 물가상승률은 16.8%, 실업률은 8.9%까지 치솟았고, 이러한 현상은 10년 이상 지속돼 1980년 1/4분기에도 경제성장률은 1.2%에 머무른 반면, 물가상승률은 연 18%, 실업률은 7.5% 안팎을 맴돌았다.
이때 등장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자유무역주의는 그의 대선 슬로건처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과 1993년 세계무역기구의 설립은 공산품과 농산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함으로써 미국경제의 활동무대를 전 세계로 확대시켰다. 비록 전통적인 제조업의 주도권은 중국 등 아시아에 넘겼지만 ICT 산업 등 첨단 분야와 금융 산업에 집중한 결과 미국은 여전히 세계 초강대국의 입지를 지키고 있다.
거세지는 관세정책 비판 목소리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정책은 경제혁명이라며 마냥 버틸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정부는 경제에서 손을 떼라’는 핸즈오프(Hands off) 시위가 날로 격화되는 한편 행정부 내부에서조차 관세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어 지금의 정책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더욱이 트럼프정부가 초래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동결하기도 어려워진 미 연준으로서는 기존의 기준금리 인하 계획을 재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트럼프 요구대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가는 인플레이션 상승이 불가피한데,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으로서는 주저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다.
이제 트럼프행정부는 전세계 모두가 반대하는 관세정책을 유지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