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선박법 대응 넘어 한국 해양경쟁력 강화 얘기해야”

2025-04-11 13:00:52 게재

해운협회, 대통령선거 기간 해양공약 건의 계획

미국은 ‘해양지배력 회복’ 대통령 행정명령 발동

한국해운협회가 오는 6월 3일 진행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에 해양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양공약을 건의할 계획이다.

해운협회 관계자는 1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해양지배력 회복을 목표로 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며 “협회 차원에서 아직 공식화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후보들에게 해운·조선산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약을 건의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정석 해운협회장은 지난달 11일 ‘국회 바다와 미래 연구포럼’이 주최한 ‘미국의 선박법 시행에 따른 해양산업 영향 및 향후 전망’ 세미나에서 “미국이 자국 해양경쟁력 강화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선박법을 채택하고 시행할 때 우리의 위기와 기회 요인을 분석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한국의 선박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국회 바다와 미래 연구포럼은 우리나라 해양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회 연구모임으로 조승환(국민의힘, 부산 중구영도구) 의원과 주철현(더불어민주당, 여수시갑) 의원이 공동대표로 운영하고 있다.

국회 바다와 미래 연구포럼은 지난달 11일 ‘미국의 선박법 시행에 따른 해양산업 영향 및 향후 전망’에 대한 세미나를 열고 우리나라 해양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사진 정연근 기자

◆바이든에서 트럼프로 이어진 해양력 회복 의지 = 해양강국 미국이 자국 해양력이 중국에 비해 뒤쳐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의회와 정부가 주도해서 해양력을 회복하기 위한 ‘신해양전략’에 집중하는 모습이 한국 해양산업과 정부 정치권에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해운·조선 전문미디어 지캡틴은 1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전에 서명한 ‘미국의 해양지배력 회복’을 위한 행정명령은 지난해 12월 마크 켈리(애리조나주, 민주당) 토드 영(인디애나주, 공화당) 트렌트 켈리(미시시피주, 공화당) 존 가라멘디(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의원이 함께 발의한 ‘미국을 위한 선박법’과 일치한다고 전했다.

법안은 미 의회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지만 올해 다시 발의될 예정이다. 미 해군 참전 용사이자 미국 상선사관학교(킹스포인트) 졸업생인 마크 켈리 의원은 이날 “미국 조선 및 해운산업에 진정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의회 승인을 제공하기 위해 몇 주 안에 ‘미국을 위한 선박법’을 다시 발의하고 행정부와 협력해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켈리 의원은 지난해 4월 공화당의 마르코 루비오(현 국무장관), 마이크 왈츠(현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의원 등과 함께 ‘국가해양전략을 위한 의회지침’을 공동 채택했다. 의회지침은 선박법으로 이어졌고, 선박법 내용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담겼다.

대통령 행정명령은 △미국 국적 선박 및 미국에서 건조한 선박이 국제무역에서 상업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 △미국의 해양산업 기반 재건 △해양산업 관련 인력의 채용 및 교육·유지·강화 △일관되고 예측가능하며 지속가능한 연방자금 확보 등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른 미국의 정책은 국가 안보와 경제적 번영을 증진하기 위해 국내 해운산업과 인력을 활성화하고 재건하는 것이라고 방향을 제시하고 명령 날짜로부터 210일 이내에 ‘해양행동계획’(MAP)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해양행동계획은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 국무부 국방부 상무부 노동부 교통부 국토안보부 장관과 미국무역대표부 등과 협력해 마련할 것을 명령했다.

행정명령에는 지난해 의회지침 이후 줄곧 강조하고 있는 미국의 북극지역 지배력 강화 조치도 포함됐다. 미국은 트럼프 1기에 이어 2기에 그린란드 매입에 대한 의지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 해양쇠퇴는 한국의 반면교사 =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10일 발행한 ‘미국의 신해양전략이 해운·조선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미국은 해운·조선산업 쇠퇴로 해양력이 약화되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물류대란을 경험하며 해운산업 기조도 개방에서 규제강화로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해운·조선산업 약화로 느끼는 위기의식과 초조함은 한국의 해양계와 정부 정치권에도 경종을 울린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상선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필리조선소(한화오션이 인수) 등 5개 미만으로 알려졌다. 2023년 기준 120개 안팎의 조선소가 있지만 상선 건조능력을 갖춘 곳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군함과 유지보수(MRO)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세계 조선시장에서 미국의 비중은 1% 미만이며 지난해 미국에서 건조해 인도한 상선은 2척에 불과하다.

해운산업도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국제항로를 운항하는 미국 외항선대는 185척에 불과해 중국 상선대의 3%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미국 국적선사였던 시랜드와 APL은 각각 머스크(덴마크)와 CMA CGM(프랑스)에 인수됐다.

반면 중국은 1978년 개방정책을 수립하면서 해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조선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2년 해양강국 전략과 2013년 일대일로 전략 발표 이후 중국의 해운·조선업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지난해 세계 조선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70%에 달하고, 수주잔량 기준으로 세계 10대 조선업체 중 5개가 중국업체일 정도로 경쟁력이 강화됐다. 미국 전략국제연구소(CSIS)는 지난달 발행한 보고서 ‘선박 전쟁’에서 중국이 정부 주도 아래 전략적으로 조선산업을 키웠고, 이는 상업선박 뿐만 아니라 해군력까지 이어져 미국의 경제와 안보를 위협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군민융합전략’(MCF)을 통해 세계 조선산업을 지배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 해군은 소규모 연안해군에서 20년만에 지역 강군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강도형(오른쪽) 해양수산부 장관이 아덴만·소말리아 해역으로 출정하는 청해부대 부대원들을 환송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곡물 등 전략물자를 해상공급망을 통해 공급하고 있고 청해부대는 우리 해상공급망 안전을 보호한다. 사진 해양수산부 제공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 미국이 해양력 쇠퇴를 깨닫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의회와 정부가 앞장서 새로운 해양전략을 짜내고 있다. 목표는 해양지배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바이든정부가 했던 조치들을 부정하는 트럼프 대통령도 바이든행정부에서 진행하던 해양경쟁력 회복을 위한 조치들을 이어받아 속도를 내고 있다.

박인호 신해양강국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지난해 미국의회 지침부터 선박법,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까지 일관된 것은 해양력이 국가안보와 경제의 핵심요소라는 것”이라며 “미국은 해양산업 지배력 회복을 위해 백악관에 해양·산업역량사무소를 신설했는데, 우리도 대통령 직속의 해양전략위원회를 구성하고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해양정책을 집중하고 총괄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미국의 해운·조선정책에 따른 실리적 접근방법도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해양수산개발원은 미국의 신해양전략과 중국선박에 대한 항만세 부과 방안 등에 따라 우리나라 해운조선산업에 기회와 위기 요인을 살폈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제안한 중국선박에 대한 항만세는 중국에서 건조한 선박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우리나라 국적 원양선사에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선사들이 중국선박 제재에 대응해 미국에 직접 투자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어 우리 선사가 가진 유리한 조건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미 무역대표부는 “동맹국들과 중국의 해운·조선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협의할 것을 고려한다”고 해 우리나라 환적물동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조선산업에 대한 장밋빛 전망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이 자국 내 건조선박을 확대하기 위해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 내 조선소를 확보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현지 시설 개선을 위한 투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미국 군함을 국내 조선소에서 유지·보수·정비할 수도 있지만 초기에는 단순한 선체 점검과 보수 등 부가가치가낮은 사업을 중심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고 해양수산개발원은 지적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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