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11주기…아직도 먼 ‘안전사회’
선·후진국형 재난 동시발생, 이중위험 사회
“안전, 제도 넘어 사회시스템으로 안착해야”
4월 16일. 2014년 그날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참사 이후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자는 의미로 제정한 국가기념일 ‘국민안전의 날’이다. 참사 이후 벌써 11번째 맞는 국민안전의 날이 불과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각종 재난·사고의 위협을 받고 있다. 세월호참사를 교훈 삼아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5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세월호참사가 있었던 2014년 이후 크고 작은 사회재난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대형 사회재난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릴 만큼 끔찍한 인명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이태원참사와 제주항공여객기참사가 대표적이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발생한 이태원참사로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2월 29일 제주항공여객기참사 땐 탑승객 181명 가운데 179명이 사망했다.
사회재난의 하나인 대형산불도 규모가 커지고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달 경북 북부지역을 휩쓴 산불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자 27명을 포함해 67명에 이른다. 집계된 피해 주택도 8289채나 된다. 산불이 진화된 지 2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1744세대 2950명이 임시대피시설이나 임시숙박시설에 머물러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땅꺼짐 사고도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재난이다. 서울 강동, 경기 광명, 부산 사상 등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에서 잇따라 사고가 발생하면서 대규모 인명피해도 우려된다. 실제 11일 광명 땅꺼짐 사고 매몰자 2명 중 1명은 구조됐지만, 나머지 1명은 나흘째 생사를 모른 채 수색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광명시는 사고 당일 공사장 인근 주민 2300여명에게 대피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발생한 서울 강동구 땅꺼짐 사고 때는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추락해 숨졌다. 부산 사상구에서는 13·14일 이틀 연속 땅꺼짐 사고가 발생해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최근까지 대규모 인명피해를 낳고 있는 공사장·물류창고 화재나 지난해 인천 서구에서 발생해 대규모 재산피해를 낸 전기차 화재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재난이다.
어느 정도 대비가 가능하다고 여겼던 자연재난도 기후위기 영향으로 예측 범위를 넘어서며 대형 재난으로 번지고 있다. 사실상 사회재난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집중호우로 인한 도로침수 사고가 단적인 예다. 실제 2020년 7월 부산 초량지하차도 참사로 3명이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불과 3년 후인 2023년 7월 판박이 같은 사고가 충북 청주시 오송에서 발생했다. 이 사고 때는 무려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대형 참사뿐만 아니라 사회재난 자체도 늘어나고 있다. 행안부가 발행한 ‘2023년 재난연감’에 따르면 사회재난은 세월호참사가 발생했던 2014년 17건 발생한 뒤 이듬해 7건으로 감소하는 듯했으나 이후부터는 줄곧 증가세다. 2019년 28건으로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2023년 다시 32건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재난이 일상이 된 셈이다.
특히 이들 재난 상당수가 사전에 주의하고 대비했으면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인재였다는 점이 더 문제다. 매번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보강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 국회에 발의된 생명안전기본법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3월 박주민·용혜인·한창민 의원이 공동발의한 이 법안은 사람의 안전권을 명시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명확히 하며, 생명안전정책의 종합적 추진을 위한 기본적인 사항과 안전사고 예방 및 대응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난 2020년 우원식 국회의장이 발의한 법안은 결국 자동 폐기된 바 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압축성장의 부작용으로 코로나19나 전기차 사고 같은 선진국형 재난과 이태원·오송·제주항공참사 같은 후진국형 재난이 동시에 발생하는 이중위험 사회를 형성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시민들은 재난 대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교는 안전 교육을 정규 과정으로 편입하며, 정부는 위기관리 패러다임을 장기적·예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송창영 광주대 방재안전학과 교수는 “매번 재난이 반복될 때마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대비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시스템으로 안착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시민이 주도하고 행정이 뒷받침하는 지속 가능한 안전 시스템 구축과 문화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