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폭탄에 더 깊어진 아시아의 금 사랑

2025-04-15 13:00:37 게재

금융시장 불확실성 커지자

인플레 방어·대체 자산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 이후 국제 금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아시아의 금 수요는 경제적 이유로 오히려 더 뜨거워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는 전통적인 혼례와 축제뿐 아니라 금융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금이 대체 자산이자 안정적 거래 수단으로 주목받으면서 금 투자 열풍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발표 이후 금 가격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국제 금값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당시보다 17.4% 오른 트로이 온스당 3166달러를 기록했다. 이틀전인 11일에는 3244.6달러로 32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금을 많이 소비하는 지역이다. 2023년 기준 인도는 세계 최대 소비국으로 금 장신구 560톤을, 금괴 및 금화는 240톤을 구매였다. 중국은 510톤의 금장신구를, 345톤의 금괴·금화를 사들였다. 태국은 금괴 수요가 전년보다 17% 증가한 40톤에 달했고, 아시아는 전 세계 금 장신구 및 금괴 소비의 64.5%를 차지했다. 이는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을 제외한 수치다. 미국의 구매 비중은 단 6.5%에 그쳤다.

아시아에서 금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문화적인 전통 때문만은 아니다. 금값이 2024년까지 40%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는 매년 약 1000만 건의 결혼이 이뤄지고, 따라서 신혼부부는 매년 300~400톤의 금을 소유하게 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금은 부의 저장 수단으로 오랫동안 인식돼 왔다. 화교 커뮤니티에서는 신랑 측이 신부를 위해 금 장신구 네 개를 선물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요인 외에도, 금에 대한 아시아인의 집착은 보다 구조적인 경제 및 재정 시스템과 깊이 연관돼 있다. 금은 불확실한 시대의 가치 저장 수단이자 인플레이션 방어 자산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특히 금이 통화 가치 하락에 대한 헤지(Hedge) 수단으로 작용한다. 인도와 중국은 투자 자유화 지수가 낮고, 자본 통제가 일반적이며, 해외 투자 기회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인도에서 현금 자산 외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금이며 평균 개인 자산의 20%를 여전히 금으로 보유 중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한다. 인도 가계의 주식 보유 비중은 6% 미만인 반면, 금은 15%에 달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주식과 주택시장은 침체인 반면, 금 가격은 5년 새 두 배로 뛰었으며 연평균 15.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금은 아시아에서 금융 안전망 역할도 한다. 인도, 중국, 파키스탄, 동남아 대부분 국가에서 노동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연금제도에 포함되지 않아, 금이 노후 대비 자산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개인에게는 합리적일 수 있는 금 투자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부담이 된다. 경제학자들은 금 투자 자금이 생산적 투자로 흐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코노미스트는 “금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신용시장 확장, 토지 기록 정비, 사법 개혁, 자본 이동 자유화 등 더 어려운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며 “결국 아시아인의 금 집착은 문화가 아니라 경제와 정치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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