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전남 의대 신설과 정부 약속

2025-04-16 13:00:02 게재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약속’의 정의다.

약속을 잘 지키면 믿음과 신뢰에 기반 한 인간관계가 가능하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가 약속을 잘 지켜야 국민은 의무를 다하게 된다. 불신이 팽배하면 그만큼 정책 집행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국가 자원이 낭비된다. 국가 운영에 있어 그 만큼 약속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전남에서 설립 대학을 정해 오면”이라는 조건을 달아 전남 의대 신설을 약속했다.

그동안 목포대와 순천대는 의대 설립을 두고 30년 가까이 싸워왔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단골로 악용했다. 감정의 골이 커질 대로 커진 탓에 누구 하나 나서서 두 대학을 설득하지 못했다. 대통령과 총리도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전남도는 만만치 않은 조건이었지만 30년 숙원이 해결될 것이란 기대를 품고 해법찾기를 나섰다. 한편으로 정부 추천 대학을 뽑는 공모를 진행하면서 두 대학 통합을 간청했다. 숱한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순천시와 해당지역 정치권이 목포대에 유리한 공모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두 대학이 통합에 합의했고, 지난해 12월 통합 대학 명의로 의대 신설 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내준 어려운 숙제를 해결한 터라 의대 신설 기대가 한층 높아진 반면 ‘희망고문’도 시작됐다.

전남도 등이 약속 이행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논의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그 누구도 책임 있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탄핵정국이 이어졌다. 속이 탄 전남도는 ‘2026학년도 정원 배정’을 빼더라도 의대 신설만큼은 공문으로 약속해 달라고 간청했으나 정부는 이마저도 외면했다.

‘의정 갈등’이라는 국가적 난제 해결이 먼저라고 십분 이해해도 결코 올바른 일처리가 아니다.

지치다 지친 전남도는 2026학년도 의대 신설을 포기하고 2027년 신설로 입장을 바꿨다. 또 의대 신설을 대선 공약에 넣기로 했다. 이 얘기는 현정부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정부 입장에선 골칫거리 하나 없어졌다고 내심 반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곱씹어봐야 할 게 있다. 약속을 저버린 정부는 국민에게 외면받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위헌·위법한 계엄선포로 파면됐다고 하더라도, 그가 재임시절 한 약속까지 파기된 것은 아니다.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최소한 어떻게 하겠다는 입장이라도 밝히는 게 어려운 숙제를 해결한 전남도민에 대한 예의다.

방국진 자치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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