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

한국 정치, 법치의 가면을 벗을 때다

2025-04-16 13:00:08 게재

한국 현대정치사는 권력의 속살을 드러내는 ‘정치 언어’의 변천사다. 박정희정권 시절은 ‘안보’와 ‘개발’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통치했다. 정치적 갈등은 국가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는 ‘민주주의’라는 언어로 정치 권력을 포장했다. 민주화의 진전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정부를 거치며 법과 제도, 절차로 가시화됐다. 의회와 시민사회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고, 각 정당과 정파 간에도 타협과 절충의 정치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대의 법은 정치갈등을 조정하는 조력자였다.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다시 국가 권력은 ‘법대로’라는 정치 언어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언론이 권력과 유착하면서 건강한 공론의 장이 사라지고 정치는 사법적 판단에 내맡겨졌다. 법이 정치를 재단하면서 정적을 겨누는 무기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이 그것이다.

이 흐름은 윤석열 검찰정권에 이르러 극대화되었다. 12월 3일 통치권이라는 이름으로 도발한 비상계엄이 그렇다. 법치의 탈을 쓴 폭력정치의 부활이다.

윤석열정권은 출범부터 자신을 ‘공정과 상식’의 정치로 포장해 ‘법치의 수호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실상은 법률기술자로서 형사사법의 무기로 통치를 제도화했다. 검찰권력을 이용해 국정을 운영한 것이다.

정치적 반대 세력은 수사와 기소로 억압하고, 집권 세력에 불리한 사안은 ‘합법적 판단의 유예’로 법망을 회피했다. 법의 정치적 중립성과 형평성을 무시하고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사용했다. ‘사법의 정치화’다. 그 결과 헌법과 법률의 목적인 권력에 대한 통제는 무기력해졌다.

윤 정권에서 극대화된 ‘사법의 정치화’

법치주의 이론가 이탈리아의 사르토리 교수는 “법치는 법에 의한 지배이지 법을 도구로 삼는 자의 지배가 아니다”라고 했다. 윤석열이 계엄법을 도구로 삼아 국민을 지배하려 했다. 반면 대통령으로서 통치행위는 법의 ‘정치적 예외 상태’로 제한했다.

그로 인해 모든 권력집단이 법치주의 가면을 쓰고 자기 보존의 기제로 법 지식을 악용하고 있다. 전·현직 검사, 법조인 출신 정치인, 보수 관료와 일부 언론까지 가세했다. 이들은 헌법의 권위까지 외면한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도 무력화시킨다.

법원과 검찰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법을 편의적으로 적용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렬의 구속취소다. 행정부까지 사법화됐다. 정부의 행정권력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집행하기보다 정치적 문제로 해석하고 회피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법률안 거부권 남발, 헌법재판관 임명거부가 그 예다.

국회의 입법기능은 사실상 마비상태다. 행정부 견제장치는 탄핵소추뿐이다. 국회는 갈등조정이 아니라 갈등조성의 공간으로 추락했다, 결국 주권자인 시민이 정치에 동원되면서 사회는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이는 극우세력의 서울서부지방법원 침탈로 나타났다.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의 지적처럼 “시민을 범법자로 전락”시켰다.

이러한 현상은 헌법의 기본가치를 무너뜨리는 ‘헌정질서의 내부적 해체’를 의미한다. 현재 한국은 헌법재판소 등 헌법기관의 고유기능을 왜곡하고 헌정 체제를 부정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법치주의는 법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정의로운 내용’에 있다. 법은 모든 권력 위에 정의롭고 공정하게 작동해야 하고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윤석열정권의 헌정질서 파괴는 한국 정치권력의 최상부를 구성하고 있는 엘리트집단의 실체를 알게 했다. 권력집단에 대한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최우선 과제가 한번도 혁신을 경험하지 못한 검찰개혁이다. 그 핵심은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의 분리, 공수처의 역량 강화, 인사권과 예산권의 정치적 중립 보장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법은 정의로운가에 대한 의문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법이 민주주의로 위장해 통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법 권위를 바로 세우는 민주적 재무장이 시급하다. 동시에 파워엘리트 충원제도 개혁이 절실하다. 현 고시제도는 성적만능주의로 ‘영혼없는 이기적 공직자’만 양산한다. 국민에 대한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 헌신과 섬김의 윤리의식과 경험을 갖춘 인재 충원방식으로 혁신해야 한다.

법의 권위 바로세우는 민주적 재무장 시급

헌법과 법률은 권력을 통제하고 시민을 보호하는 최후 규범이다.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통치는 진정한 법치가 아니다. 법치는 정의로운 법이 모든 권력 위에 서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법이 정의를 잃으면 필연적으로 독재의 가면으로 탈바꿈한다.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권력의 폭력, 민낯을 보았다.

정의로운 법 그 자체가 통치의 기반일 때 만 민주주의 헌정질서가 바르게 선다. 그 질서를 바로 세울 개혁의 시간이다. 이제 한국 정치에서 법은 정의의 언어로, 정치는 조화로운 공존으로 바뀌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