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미국 사모펀드로 불똥
자금원인 고위험 사채·IPO 시장 꽁꽁 얼어붙어 ··· 고금리 사모대출로 돌려막기

정크본드(투자등급 CCC 이하의 고위험 회사채) 시장의 동결은 사모펀드과 은행들에게 타격을 준다. 사모펀드는 기업 인수 때, 은행에서 단기 자금을 빌려 목표기업을 인수한다. 이후 해당 기업의 회사채를 대규모로 발행해 은행 대출금을 갚고, 회사 경영을 통해 수익을 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한 이후, 미국에선 경기침체 우려가 번졌다. 이로 인해 1조4000억달러 규모의 정크본드 시장에서는 채권 발행이 단 한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 유동성이 얼어붙으면서 기업 인수 거래도 성사되지 않고 있다.
쉔크먼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멀티자산신용 부문 대표인 밥 크리체프는 현재 채권 시장이 “모든 게 보류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같은 환경에선 아무도 거래 가격을 책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의 공격적인 무역 정책은 투자자들의 심리를 크게 뒤흔들었다. 트럼프의 2일 발표 이후 일주일 간 고위험채권 펀드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자금 유출이 발생했다고 FT는 전했다.
이 영향으로 사모펀드 HIG의 컨버지테크놀로지시스템 인수 자금 조달과 아폴로가 지원하는 ABC 테크놀로지스의 티아이 플루이드 시스템 인수 등이 중단됐다.
은행들은 손실을 막기 위해 사모펀드들에게 제공하는 인수 자금 대출 조건을 바꾸고 금리를 올렸다. 씨티그룹, 모건스탠리, JP모건 등 일부 대형 은행들은 고위험 회사채에 대한 수요 부족 때문에 기존에 계획했던 채권·대출 조달 계획을 전면 중단했다.
여기에 증시의 주가 하락까지 겹쳐 사모펀드 업계와 주요 거래 은행들은 기업 인수 거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캐니언 파트너스의 최고 투자 책임자인 제프 키비츠는 “은행들이 내준 일부 단기 차입금이 장기 차입금으로 묶일 수가 있다”면서 “이 때문에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2일 관세 발표 후 정크본드 시장 뿐 아니라 투자등급(BBB 또는 Baa 등급 이상) 채권 시장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2일부터 트럼프의 90일간 관세 유예가 발효된 9일 사이에 신규 발행은 단 한건에 불과했다.
사모펀드의 전통적인 자금원인 IPO(신규상장) 시장도 활동이 멈췄다. 지난 7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의 핀테크 기업 클라나가 신규상장을 철회했고, 샌프란시스코 핀테크 기업 차임도 IPO 보류를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급전이 필요한 은행들과 사모펀드들은 손실을 예상하면서도 ‘사모대출펀드Private Credit Fund)’를 활용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PCF는 은행 대신 돈을 빌려주는 투자펀드다.
사모펀드인 블랙스톤과 실버레이크 출신들이 설립한 사모펀드 베이파인은 지난주 생명과학 기업 세넥셀을 약 13억달러(1조86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베이파인은 대형 사모대출펀드인 블루 아울에서 대출을 받아 자금을 조달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