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 경영 환경 악화…빅4에 유리한 구조 개선

2025-04-16 13:00:13 게재

상장사 감사하는 ‘등록 회계법인’ 줄어들 듯

실적 부진에 품질관리 비용 더 이상 감당 못해

당국 ‘감사인 지정 방식’ 중견·중소회계법인 고려

경기 둔화 여파와 감사 시장에서의 출혈 경쟁으로 회계법인들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회계업계에서는 상장회사를 감사할 수 있는 ‘등록회계법인’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이 감사인등록제 시행으로 일정 요건을 갖춘 등록회계법인에 대해서만 상장회사의 외부감사를 허용하면서, 감사인등록을 위해 중소회계법인들이 몸집을 불리고 품질관리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투자를 확대했다. 하지만 실적 악화로 품질관리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진 회계법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6일 금융당국과 회계업계에 따르면 등록회계법인 2곳이 등록 간판을 내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 내에 등록회계법인이 40개에서 38개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은 등록회계법인의 품질관리 강화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품질관리는 회계법인의 감사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으로 물적·인적 요건을 갖춰야 하고 이를 유지·강화하는데 상당한 비용 투입이 필요하다.

중소회계법인들이 등록법인을 유지하려면 현재 소속 회계사 40명 이상인 인적 요건보다 더 크게 규모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등록법인인 진일 회계법인과 세일원 회계법인이 합병하면서 소속 회계사가 각각 50~60명 수준에서 100명이 넘는 태일 회계법인이 출범했다. 그 결과 등록회계법인은 41개에서 40개로 줄었다.

조만간 간판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등록회계법인 2곳도 감사부문 일부가 다른 등록회계법인과 합병할 가능성이 높다.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은 올해 감사계약 과정에서 소위 빅4(삼일 삼정 안진 한영)인 대형회계법인들의 출혈경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금융당국이 특정 기업의 외부감사인을 지정해주는 방식마저 빅4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계속 이어지면서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의 불만이 커졌다.

결국 금융당국은 감사인 지정방식 개선을 통해 빅4와 중견·중소회계법인의 형평성을 제고하기로 했다.

15일 금융위원회는 감사인 지정점수 적용방식 개선 등을 포함한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외부감사규정) 일부개정안 규정변경을 예고했다.

금융당국으로부터 기업의 외부감사 지정을 많이 받을수록 회계법인 매출은 올라간다. 현재 감사인 지정은 회계법인별로 공인회계사 수, 품질관리 수준 등에 따라 감사인 점수가 매겨지고 감사인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자산규모가 큰 기업의 감사인으로 지정된다. 기업이 배정될 때 마다 일정비율로 점수를 차감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자산 2조원 이상 회사 배정시 점수 차감 폭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자산 2조원 이상 회사를 감사할 수 있는 곳은 빅4뿐이다. 그동안 차감 점수는 자산 5000억원 미만 기업을 기준으로 20점이다. 5000억원 이상 2조원 미만은 40점으로, 차감 폭이 2배 높다. 2조원 이상 기업은 60점으로 3배다. 10조원 이상 기업 1곳을 지정받은 것이나 5000억원 미만 기업을 3곳 지정받는 것이나 같다는 말이다.

실제 빅4의 지정 비중은 2021년 36%에서 2022년 43%, 2023년 51%, 지난해 54.8%로 계속 증가했다.

중견·중소회계법인에서는 가중치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10조원 이상 기업의 경우 8~9배 이상 가중치를 적용해야 한다고 당국에 요청했다.

금감원에서도 내부 검토를 벌인 결과 형평성 차원에서 자산 10조원 이상 기업에는 8배의 가중치 부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회계업계와의 논의 과정에서 절충안을 마련했다. 2조원 이상 5조원 미만에 대해서는 3배(60점), 5조원 이상 10조원 미만에 대해서는 4배(80점), 10조원 이상에 대해서는 5배(100점)의 가중치를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개정기준에 따르면 회계법인이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기업 1개의 감사인으로 선임되는 경우, 자산규모 5000억원 미만 기업 5개의 감사인으로 선임된 것으로 보아 감사인 점수를 일정비율로 차감하게 된다”고 밝혔다.

회계업계에서는 이 같은 개정으로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의 매출이 약 200억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상황이 조금 나아지는 측면은 있지만 큰 개선 효과는 없을 것”이라며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의 경영 악화는 한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회계·감사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에 대해 주기적 지정(외부감사를 6년간 자유선임한 이후 3년간 금융당국이 지정)을 유예하기 위한 유예 근거와 평가기준이 규정됐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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