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년은 국민연금에 분노하지 않는다

2025-04-17 13:00:06 게재

국민연금 개혁 얘기만 나오면 꼭 따라붙는 말이 있다. “기성세대는 많이 받고 청년세대는 손해만 본다.” 마치 청년이 국민연금에 절망하고, 당장이라도 탈퇴하고 싶어 하는 듯한 기사들이 연일 쏟아진다. 그러나 96년생 실제 청년인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단지 내가 나중에 받을 돈이 아니다. 이미 지금도 부모님의 노후를 지탱하고 있고, 미래에는 내 자식 세대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제도다. 국민연금은 각자 개인이 감당하던 노후 리스크를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장치다. 국민연금이 무너지면 다시 가족이 부모 부양을 책임져야 하고 그건 결국 우리 몫이다. 그래서 나는 국민연금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판의 대상은 제도가 아니라 제도를 왜곡하는 정치적 논리와 갈등 조장이다.

“50세는 1억4000만원 내고 3억6000만원 받는다”는 식의 자극적 보도는 사실을 왜곡한 결과다. 가입기간과 수급기간, 기대여명 등을 비현실적으로 설정한 계산일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 가진 사회보험으로서의 성격은 쏙 빠져 있다. 세대 간 수익률 격차는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기성세대의 혜택이 과도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정치권 제도 왜곡하고 갈등 조장

이번 개혁안에 청년세대를 고려한 설계가 일부 담긴 건 사실이다. 소득대체율 인상은 2026년 이후 신규 가입자부터 적용되고 군복무 크레딧이나 출산 크레딧도 청년세대에게 더 유리하게 설계됐다. 물론 보험료 인상으로 인한 부담은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공적 책임의 확대’라는 방향으로 이해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통해 내가 내 부모를 부양하던 체계에서 사회가 우리 부모를 함께 책임지는 체계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인 건 이번 연금개혁안이 공론화 과정을 제대로 거쳐 도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연금개혁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 500명이 논의에 참여했고 청년들을 포함한 다수는 소득대체율 인상, 크레딧 확대,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강화에 뜻을 모았다. 그러나 이후 여야정 협상 과정에서 이들 내용은 대폭 축소됐고 정작 공론화에 없던 자동조정장치와 세대별 차등보험료안이 밀실에서 추가됐다. 청년을 위한 개혁이라면서 정작 청년의 목소리는 빠졌다.

정말로 청년을 위하려면 청년팔이로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국고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지속가능하려면 개인의 책임만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보험료율을 높이면서도 정부 지원을 외면하는 방식은 결국 청년에게만 부담을 전가하는 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대 간 책임 전가가 아니라 국가의 재정 책임 강화다.

필자는 국민연금을 걱정하는 청년이지 기성세대를 향해 분노하는 청년이 아니다. 그러나 일부 정치세력은 특례노령연금과 같은 과거의 예외적 제도를 일반화하며 기성세대를 비난하고 언론은 ‘청년의 분노’라는 프레임으로 갈등을 조장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신과 대립이 아니라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회적 합의다.

불신과 대립 아닌 연대의 개혁이어야

국민연금 개혁은 분명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그 방향은 명확해야 한다. 세대를 나누고 이간질하는 개혁이 아니라 모두의 삶을 함께 책임지는 연대의 개혁이어야 한다. 청년은 국민연금에 분노하지 않는다. 청년이 분노하는 대상은 국민을 이간질하는 정치다.

문다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