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시진핑의 ‘선별적 관대함’과 한국의 선택

2026-05-26 13:00:06 게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주 베이징에서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 정상에게 서로 다른 선물을 건넸다. 여기에 중국식 계산법이 숨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압박 협력, 반도체 수출 확대, 대규모 무역합의를 의제로 베이징을 찾았다. 결과는 보잉 200대 구매, 연간 17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 구매, 30억달러 규모 상호 관세인하 협상 틀이었다. 트럼프는 “판타스틱”이라고 자평했지만 핵심 의제에서는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푸틴은 달랐다. 에너지·무역·기술·군사·문화를 망라한 약 40건의 협정에 서명했고 2001년 중러 우호협력조약을 연장했다. 47쪽 공동선언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국제법 위반으로 명시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골든 돔’을 “전략적 안정에 명백한 위협”으로 비판했다. 미국·일본의 대중 미사일 배치에 공동 대응 입장을 밝혔고, 우크라전쟁의 “근본원인 제거”라는 러시아 논리를 사실상 수용했다.

이런 비대칭이 ‘선별적 관대함’의 실체다. 트럼프에게는 ‘체면을 살려주되 전략적 실질은 주지 않는’ 관대함이었다. 보잉 계약과 농산물 구매는 트럼프가 국내 정치에 쓸 수 있는 선물이지만 ‘이란’ ‘반도체’ ‘무역’이라는 전략의제에서 중국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푸틴에게는 ‘실질을 주되 묶어두는’ 관대함이었다. 협정과 선언은 러시아에 대한 실질 협력인 동시에 러시아를 중국 중심 질서 안으로 제도적으로 편입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최대 목표로 삼았던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타결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가 “외교는 권력의 언어로 말한다”고 했듯이 누가 제공자이고 누가 요청자인지가 두 회담에서 증명됐다. 트럼프는 이란전쟁에 묶인 채 중국의 협력이 필요했으나 얻지 못했다. 러시아는 서방제재에 포위돼 에너지·기술·외교 전방위에서 중국에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

채텀하우스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부연구원 티머시 애시는 알자지라에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가 모자를 손에 쥐고 베이징을 찾은 것처럼 푸틴도 그랬다. 중국이 모든 패를 쥐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를 밀어내지도 않고 푸틴과의 연대를 숨기지도 않으면서 두 거래를 동시에 성립시켰다.

이 장면은 한국에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이재명정부는 한중관계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처럼 상징적 성과에 만족할 것인가, 푸틴처럼 중국 주도 질서 안으로 편입되는 대가를 치를 것인가. 한국의 선택지는 그 어느 쪽도 아니어야 한다. 경제적 실익을 의제로 삼되, 안보구조에서의 전략적 자율성을 양보하지 않는 각도를 사전에 설계해야 한다. 외교는 우정이 아니라 균형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정재철 국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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