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소법 ‘ 과징금 부과 기준’ 모호…상품별 차이, 당국 ‘심사숙고’

2025-04-17 13:00:04 게재

홍콩H지수 ELS 사태 제재 절차 1년간 멈춰

금감원, 업권별 취합해서 통일된 기준 검토

금융위, 법령심의위원회 회부할 가능성도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었지만 금융당국이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에 대한 제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금융상품 불완전판매에 따른 금융소비자법(금소법)상 ‘징벌적 과징금 부과’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금소법 시행 이후 은행과 증권사가 판매한 홍콩H지수 ELS 규모는 약 17조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금소법 위반에 따른 과징금 법정부과한도는 불완전판매액의 50%다. 불완전판매 비율이 상품판매액의 30%라고 하면 법정부과한도는 약 2조5650억원이다.

천문학적인 과징금 부과가 예상되지만 금융상품별로 금소법 적용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서 금융당국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1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금융위원회는 ‘과징금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해왔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금감원은 검토 의견서 작성에 들어갔다.

◆‘계약으로 얻은 수입’은 매출? 수수료? = 금융소비자보호법 57조는 금융회사가 불완전판매 등 위반행위와 관련된 계약으로 얻은 수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의 100분의 50 이내에서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쟁점은 ‘계약으로 얻은 수입’을 어떻게 해석할지이다. ELS 판매금액인 매출을 수입으로 보면 과징금 부과액은 2조원 이상으로 커지지만, 판매 수수료(순익)를 수입으로 볼 경우 최대 수백억원 수준으로 차이가 크다. 5대 은행의 3년간 홍콩H지수 ELS 판매수수료는 1866억원이다. 불완전판매 비율이 30%라고 가정하면 최대 과징금 부과한도는 600억원 가량이다.

문제는 ELS 상품에 대해서만 해당 규정을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상품에 대해서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업권별로 금융상품의 유형은 다양하다. 대출, 보험, 펀드 등 성격이 다른 금융상품에 따라 과징금 부과 기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대출 상품의 경우 대출을 수입으로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수수료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보험의 경우 보험업법에 이미 수입보험료에 대해 최대 50%까지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다.

금소법에는 과징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수입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서 금융당국이 이번 기회에 적용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융업권별 상황과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수입보험료에 대해서도 사업비를 뺀 순익을 수입으로 볼 것인지,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안이 너무 복잡해서 쉽게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금감원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금감원의 검토 의견서를 참고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금융위가 법령 해석과 적용 문제를 법령심의위원회에 회부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천문학적 과징금’ 부담, ‘징벌적 성격’ 부과 필요 = 금소법에 따른 조단위 과징금 부과는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계약으로 얻은 수입’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은행들이 손실을 입은 계약자들로부터 90% 이상 자율배상 동의를 받은 만큼 대규모 과징금 부과가 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금소법의 과징금 부과 취지가 ‘징벌적 성격’이 있는 만큼, 금융상품 판매수수료로 제한될 경우 입법 취지를 벗어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입법 취지를 행정조치로 무력화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현행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으로도 은행의 자율배상 등의 조치를 고려해 금융위가 과징금을 대폭 감경할 근거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규정에 따르면 기본과징금은 법정부과한도액에 부과기준율을 곱해 산출된다. 부과기준율은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일 때 100%, 중대한 위반행위일 때 75%, 중대성이 약한 위반행위일 때 50%다.

법정부과한도에서 최대 50%까지 기본과징금이 줄어들 수 있다. 기본과징금에서 가중·감경 사유에 따라 과징금 부과액이 다시 50% 이내에서 조정될 수 있다. 여기에 과징금 부과가 법위반의 방지 또는 제재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벗어나 현저하게 과중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가중·감경 사유 조정 후 과징금의 50% 이내에서 최종 감액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 금융위가 부당이득액의 10배를 초과하는 과징금에 대해 감액할 수 있는 조항도 있다.

2019년 금소법 시행 이후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가 있다. 존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재직 당시 금소법상 광고 관련 의무를 준수하지 않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자사 펀드 5개를 광고한 사건은 금융당국이 금소법상 과징금 부과 쟁점들을 판단한 사실상 첫 제재였다.

금융당국은 과징금 부과시 기준금액을 펀드 판매금액으로 했으며, 과징금 부과액이 과도하다며 감액을 결정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펀드 판매액을 기초로 과징금 22억2500만원, 과태료 3억원을 의결했다. 하지만 2심 성격의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부당이득액(판매수수료)의 10배를 초과한 부분에 대해 감액을 결정, 과징금 9억7400만원과 과태료 1억2000만원을 부과하도록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대한 신속하게 결론을 낼 것”이라며 “상반기 내에는 과징금 부과 기준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말 기준 은행권(5개 주요 판매은행) 홍콩H지수 ELS 손실 확정 계좌는 17만건으로, 원금 총액 10조4000억원 중 손실금액은 4조6000억원(누적 손실률 44.2%)로 나타났다. 자율배상이 진행 중인 계좌는 16만9000건(99.2%)으로 지난해말 현재 15만9000건(손실액 4조1000억원, 배상액 1조3000억원)의 자율배상 동의가 완료됐다. 배상진행 계좌의 93.8% 수준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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