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연준, 양대 목표 달성 힘들 수도”
관세 전쟁에 물가 상승 가능성 커
국채 금리 급등 현상 등 혼란 지속
반도체 수출제한 강화에 증시 급락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예상보다 높은 관세로 물가 인상과 성장 둔화가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또 연준이 물가와 성장 중 어디에 더 초점을 맞출지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며 연준의 양대 목표 달성이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관세 전쟁에 물가 상승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관세 발표 이후 수익률이 급등한 채권시장 혼란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뉴욕증시는 전날 미국 정부가 AI 기업 엔비디아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한 영향을 받아 급락했다.
◆‘당분간 금리 인하는 없다’= 16일(현지시간) 파월 의장은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이코노믹 클럽에서 한 연설을 통해 “우리는 양대 목표(최대 고용·물가 안정)가 (서로) 긴장 상태에 놓이는 도전적인 시나리오에 직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행정부가) 발표한 관세 인상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다”며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 둔화를 포함한다”고 경고했다.
연준은 최대 고용을 유지하면서 인플레이션을 2%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 경제 성장을 촉진해 고용을 늘릴 필요가 있을 때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물가를 잡는 게 우선일 때는 기준금리를 올린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둔화하면 물가도 낮아지고 실업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양대 목표를 둘 다 달성할 수 있지만, 관세는 물가와 실업률을 둘 다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파월 의장의 인식이다.
파월 의장은 “우리의 도구(기준금리 변경)는 같은 시점에 두 개(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 중 하나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월 의장은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경기둔화가 우려 되지만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파월은 또한 ‘당분간 금리 인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 조정을 당장은 고려하지 않고 경제 상황을 더 관망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관세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향후 발표될 데이터를 확인하며 대응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반복했다.
파월 의장은 증시가 급락하면 연준이 시장에 개입하는 이른바 ‘연준 풋’을 기대해도 되냐는 질문에 “아니다”라며 “시장은 원래 취지대로 작동하고 있고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달러화가 부족할 경우 달러화를 공급할 준비가 됐냐는 질문에는 연준이 외국 중앙은행들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점을 거론하면서 “그렇다”고 답했다.
◆기술주 투자심리 악화 = 지난해 증시를 이끌었던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H20 칩을 대중 수출 제한 대상으로 삼으면서 투자심리가 악화했다.
미국 상무부는 엔비디아의 H20 칩을 중국으로 수출할 때 새로운 수출 허가 요건을 적용한다고 전날 발표했다. AMD의 AI 칩 MI308을 비롯해 이에 상응하는 다른 칩들도 이번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고 상무부는 덧붙였다. 이번 조치로 엔비디아는 회계연도 1분기(2~4월)에 55억달러(약 7조8천6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1분기 실적을 재산정해야 하는 만큼 주가도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2년부터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미국산 최첨단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규제해 왔다. 엔비디아는 규제를 피하고자 H100 칩에서 성능을 낮춘 H20 칩을 중국에 수출해왔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마저 제한하면서 엔비디아는 충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소식에 엔비디아는 장 중 낙폭을 10.47%까지 확대한 뒤 -6.87%에 거래를 마쳤다. 업종별로는 에너지를 제외한 모든 업종이 하락했다. 기술은 3.94% 폭락했고 임의소비재와 통신서비스도 2% 넘게 떨어졌다. 거대 기술기업 7곳을 가리키는 ‘매그니피센트7’은 모두 주저앉았다. 엔비디아를 제외한 나머지 종목도 대체로 3% 안팎의 낙폭을 보였고 테슬라는 5% 밀렸다.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기업 위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4.10% 급락했다.
ASML은 1분기 수주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7% 넘게 급락했다. AMD 또한 일부 제품이 엔비디아와 마찬가지로 미국 당국의 규제 대상이 되면서 7% 넘게 밀렸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 6월 말까지 기준금리가 동결될 확률은 27.3%를 유지했다. 전날 마감 무렵과 거의 같았다. 50bp 인하 확률도 파월의 매파적 발언에도 불구하고 11.2%로 거의 변동이 없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