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트럼프 관세전쟁은 글로벌 ‘균형점 재설계’ 신호

2025-04-18 13:00:11 게재

2025년, 세계는 다시 격랑 속에 들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함께 미국은 ‘국가적 흑자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형태의 경제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에도 타깃은 중국이며, 그 외곽에는 한국과 독일, 일본 등 전통적인 수출 강국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관세 환율 무역수지 공급망이라는 전통적 키워드 이면에는 미국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와 부채 위기라는 본질이 숨어 있다.

트럼프 의도는 ‘전면적인 환율 재편 시도’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는 왜 이토록 관세에 집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이것은 질문이 틀렸다. 트럼프는 관세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적자라는 개념을 없애려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 미국의 2기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꺼내든 경제무기의 실체는 단순한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라 ‘전면적인 환율 재편 시도’이자 글로벌 금융질서 재정비 시도이다.

트럼프 2기 경제팀은 이미 단순한 관세율 경쟁을 넘어서고 있다. 그들이 제시한 논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우리가 특정 국가와 거래를 했을 때 얼마나 적자를 보았는가”라는 점을 기초로 해 적자 규모를 수입액으로 나눈 뒤 관세율을 산정한다. 이를 ‘상호관세(Mutual Tariff)’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일방적 관세 폭격이다.

이 방식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규범과도 충돌하며 전통적인 자유무역 논리와도 완전히 배치된다. 그러나 미국이 이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미국 내부에서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소비 중심 경제다. 하지만 제조업의 공동화와 기술 유출, 블루칼라의 몰락은 미국경제의 내실을 허물었다. 남은 건 소비만인데 이 소비조차도 해외 생산에 의존하고 있다. 돈은 미국에서 나가고 일자리는 외국에 생긴다. 그 결과 미국은 매년 1조달러가 넘는 무역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실질적인 생산역량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트럼프행정부는 관세를 넘어서 ‘달러의 평가절하’라는 카드까지 검토하고 있다. 30% 관세 인상은 환율 30% 하락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결국 무역균형의 달성은 환율을 통한 수출 유인과 수입 억제, 그리고 공급망의 정치적 재배치를 통해 완성된다.

미국의 본심은 분명하다. “우리는 더 이상 세계의 소비자가 되지 않겠다.” 소비자 국가로서의 부담을 줄이고 달러 절하를 통해 채무를 탕감하려는 시도다. 37조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누적 부채는 이제 국가 시스템을 위협할 정도로 불어났고 연준은 이를 모른체하고 있다.

해결책은 명백하다. 달러를 약세로 만들면 부채의 실질가치는 줄어든다. 30%의 달러 가치 하락은 37조달러의 부채를 25조 수준으로 ‘디지털하게’ 삭감하는 것이다.

관세정책은 이러한 환율절하 시나리오를 가리기 위한 연막탄이며, 실제 전장은 ‘국제통화질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 독일 일본 유럽 등 동맹국에게조차 “달러를 떠받치거나 우리에게 유리한 환율을 수용하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제2의 플라자합의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00년 만기 국채 발행하려는 미국

미국은 현재 100년 만기 국채를 발행하려고 하고 있으며 관세 몽둥이를 휘둘러 동맹국을 포함한 약세 국가들에게 강제로 구매하게 함으로써 올해 6월 돌아오는 방대한 국채 만기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내 소비시장은 작고, 기업의 투자 역시 해외 수요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그렇기에 한국은 관세와 환율 모두에 취약하다. 현재 미국은 한국에 25% 관세를 부과했으며 앞으로 100년물 국채 매입 압박에 이어 환율 절상을 압박할 것이다. 이는 한국의 수출경쟁력에 이중의 타격을 준다.

과거 일본이 플라자 합의(1985)를 통해 엔화 절상을 강요받고 수출 기반이 무너졌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상황은 과거 일본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미 FTA 무력화’ 수준의 압박과 함께 “환율도 미국이 정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반면 중국은 대응 전략을 조정 중이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는 시진핑정부는 이제 더 이상 수출로만 성장하기 어렵다. ‘내수 기반 성장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14억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지만이 중 대부분은 월 2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이다. 현재 미국 수준의 소비를 하는 중산층은 약 1억5000만명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가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세가지다. 첫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해 임금수준을 끌어올리는 것. 둘째, 주식시장과 자산시장을 활성화해 자본소득을 통한 소비 여력을 확대하는 것. 셋째, 정부의 복지 확대와 직접적인 소득 재분배 정책을 통해 ‘소비할 수 있는 민중’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중국판 소비사회’로의 진입을 의미하며, 미국의 수입 수요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경제 질서의 구축이다.

현대 경제의 본질은 부채다. 미국 중국 유럽 모두 부채를 기반으로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 부채가 실물과 점점 더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국채를 발행하고, 연준이 이를 사들여 달러를 발행하며, 이 달러는 주식 채권 부동산 같은 자산시장으로 흘러든다. 그러나 생산은 외국에서 일어나고, 고용은 줄어들며, 소비는 빚에 의존한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외환보유액을 기반으로 한 위안화 발행에서 출발해 이제는 국채 기반 위안화 발행으로 전환되었다. 결국 양국 모두 금융 팽창에 기대는 ‘부채 화폐 체제’로 전환된 셈이다.

이제 세계경제는 더 이상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분절된 통합', 즉 데이터, 자본, 기술, 물류가 각각 다른 원칙에 따라 재편되는 다중 네트워크형 경제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과거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다음과 같은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첫째, 외교·무역 통화정책의 분리로 미국과의 정치적 동맹을 유지하되 무역 및 금융 전략은 다자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국내 소비시장 활성화로 내수 강화를 위한 소득정책, 복지정책, 디지털 인프라 확장이 필요하다.

셋째, 디지털 산업전략 강화로 메타버스, 인공지능(AI), 웹(Web)3.0 등 미래산업에서 독자적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자본통제와 금융방어막 설계로 급변하는 환율에 대응할 수 있는 거시건전성 정책과 외환 방어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미중 충돌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국가의 운명은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다. 관세 환율 부채 무역전쟁 우리는 이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읽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균형점 재설계’의 신호다. 소비국가로서의 미국의 역할은 서서히 저물어가고 중국이 그 공백을 채우기는 아직 역부족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익숙한 미국 달러시대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앞으로의 세상은 크게 혼동될 것이다. 그것은 미국을 대신해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역할을 주도적으로 안고 갈 국가는 눈 비비고 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글로벌 질서에서 한국이 생존하려면 과거의 연장선이 아니라 미래의 설계도를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모든 국가가 경제전략을 바꾸는 이 시점에서 한국이 세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생태계’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이 앞으로 10년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 미국 어바인대(UI)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