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모집인원 놓고 정부내 갈등

2025-04-18 13:00:55 게재

‘원칙 지켜야’ ‘교육 정상화 우선’ 대립 … 이주호 부총리 브리핑에 복지부 배석 안 해

더 내밀 카드 없는 정부·대학, 수업 거부엔 원칙 대응키로 … “수업 참여 유도 시급”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이 ‘증원 전’ 3058명으로 돌아간 것과 관련해 정부내 엇박자가 노출됐다. 하지만 모집인원 조정이 결정된 상황에서 논란을 키우기 보다는 교육 정상화를 위한 의대생 복귀에 정부와 대학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는 17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내년 의대 모집인원 브리핑 직후 기자단에 입장문을 배포했다. 입장문에서 복지부는 “의대 학사일정이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여건을 감안한 조치라고 생각되나 3월 초 발표한 2026년 의대 모집인원 결정 원칙을 바꾸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전 비공개 회동서 반대 입장 = 사실상 이견을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모집인원 조정 발표를 앞두고 16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이 부총리, 조규홍 복지부 장관 등이 비공개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복지부측이 이견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부총리가 의대 교육 정상화 등의 이유를 들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밀어 붙여 모집인원 조정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와 복지부 간 마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7일 이 부총리가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내년 모집인원을 증원 전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발표한 브리핑에도 조 장관을 비롯해 복지부 인사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브리핑에 앞서 6일 열린 정부와 대통령실간 비공개회의에서도 양측이 충돌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이 부총리는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으로 축소해서라도 의대생을 복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장상윤 전 대통령실 사회수석과 조 장관은 이에 반대했다고 한다.

이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일단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엇박자 논란과 관련한 질문에 이 부총리는 17일 브리핑에서 “교육부가 의대 교육 정상화의 책임 부서이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장관이나 관계자들은 책임 부서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을 지고 있는 장관으로서 제 의견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 조정 방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이주호 부총리, 양오봉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 회장,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 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수업 참여 망설이는 학생들에 명분 = 이 부총리는 17일 의대가 있는 40개 대학 총장 모임인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 양오봉·이해우 공동회장과 의대 학장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 이종태 이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 조정 방향’ 브리핑에서 내년 의대 모집인원을 확정·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지난달 7일 정부가 의대교육 정상화를 위해 의대생들이 3월 내 전원 복귀할 경우 내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이번 달 초 사실상 의대생 전원이 등록·복학 신청을 완료했다. 다만 일부 의대에선 학생들이 ‘등록 후 투쟁’ 방침을 밝히며 수업 거부에 나서 실질 복귀율은 40개 의대 전체 학년 평균 25.9%에 그쳤다.

교육부는 “현재 의대생 수업 참여가 당초 의총협과 의대협회가 3월에 제시한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의총협이 1년 이상 지속된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대교육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수업 복귀 및 의대교육 정상화를 반드시 실현하기 위해 2026학년도에 한해 각 대학이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전인 2024학년도 입학정원으로 확정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의총협 일각에선 전원 복귀가 지켜지지 않았으니 3058명은 안 된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전날 열린 긴급 화상회의에서 의대생 수업 참여 유도를 통한 의대교육 정상화를 위해 회귀가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협회 역시 수업에 참여하는 의대생뿐만 아니라 아직 망설이는 의대생의 수업 참여 계기도 마련하고, 조속한 의대교육 정상화를 위해 내년 의대 모집인원 조정을 확정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정부와 대학이 어렵사리 돌아온 학생마저 놓치는 것보단 학생의 신뢰를 얻고 수강률을 차츰 높여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의대 1학년 트리플링’ 사태 막아야 = 정부내 이견 속에서도 이제는 교육정상화를 위해 수업 복귀를 유도하는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와 대학이 ‘의대 1학년 트리플링(tripling)’ 사태 차단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정부내 불협화음 속에서도 모집인원 조정을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24·25학번의 계속된 수업 거부로 인한 유급이 현실화되면 내년도 1학년에만 26학번을 포함한 3개 학번이 겹쳐 교육대상이 1만명에 달하게 된다. 1만명 수업은 사실상 교육 불능이라는 것이 교육계의 공통된 생각이다.

일단 학생들의 수업 참여율을 더 끌어올려 유급 규모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계 일부에선 의대생 절반가량만 수업에 복귀하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육부는 이날 “24·25·26학번이 겹친다면 24·25학번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기 어려울 수 있고, 돌아오더라도 원하는 교육을 못 받을 수 있다”며 “이는 협박이 아니라 팩트를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대학은 학생들에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강조하고 있다. 집단 제적·유급 사태를 막고자 지난해에는 학사 유연화를, 올해는 내년 의대 모집인원 조정을 유화책으로 내밀었지만 더 이상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은 정부 직속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가 결정한다. 의료계 일부에서 요구하는 내년 의대 모집인원 ‘0명’ 혹은 감원은 수험생과 학부모 반발이 커 고려사항이 아니다. 특히 의대생에게만 계속 예외를 적용하며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대학 내부의 곱지 않은 시선도 부담이다.

현재 각 대학은 복학했지만 수업 불참 의대생에 대해 학칙대로 엄정하게 처분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수도권 한 의과대학 학장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것이 각 의과대학이 처한 현실이라 학생 보호도 어려운 처지”라며 “학생들도 당장 실현불가능한 주장보다는 학업을 이어가면서 새 정부 출범 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내부에도 이견이 있겠지만 지금은 교육 정상화를 위해 힘을 모을 시기”라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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