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실물 이전, 증권사 선호 현상 뚜렷
ETF 등 상품·앱 경쟁력 탁월
증권업 성장·수익성 확대 전망
신용도 가르는 변수 작용할 듯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 도입 이후 증권업에 대한 선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다른 금융업권에 비해 상장지수펀드(ETF) 등 상품 경쟁력이 탁월하고 증권 앱은 실시간 매매 시스템, 시계열 차트, 호가창 제공 등 모바일 거래 편의성이 타 업권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증권사로 퇴직연금 자금이동은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증권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은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증권사들의 신용등급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퇴직연금 점유율이 증권사 신용도를 가르는 변수가 될 전망이다.
◆3개월간 증권사로 5868억원 순유입 = 18일 금융투자업계와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도입 이후 3개월간 증권업으로 4050억원이 순유입됐다. 대부분은 은행업권에서 유입된 금액이다. 보험은 증권과 은행으로부터 각각 59억원, 502억원 유입됐다.
DB형 계좌는 여전히 은행과 보험업권에 대한 선호가 강하지만, 가입자가 직접 운용해야 하는 확정기여형(DC), 개인형퇴직연금(IRP)계좌에서는 증권업으로의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DC, IRP계좌만 보면 증권업으로 5868억원이 순유입되었으며, 은행으로부터 5417억원, 보험업으로부터 452억원이 순유입됐다.
작년 10월 말부터 올해 1월 말까지 퇴직연금 실물 이전 서비스 이용 실적을 보면 3개월 동안 적립금 약 2조4000억원, 3만9000건이 이동했다. 신승환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퇴직연금 실물 이전 서비스 도입 3개월 만에 이런 규모의 자금이 이동한 점을 고려하면 향후에도 증권업으로의 자금 이동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ETF 투자 열풍 = 퇴직연금 시장에서 증권업이 강세를 보이는 원인은 다른 업권에 비해 ETF 등 상품 경쟁력이 탁월하다는 점과 플랫폼 경쟁력의 우수함이 꼽힌다.
먼저 증권사들은 연금 포트폴리오에서 다양한 ETF 상품거래를 지원한다.
퇴직연금을 통한 ETF 투자는 2015년부터 시작됐는데, 작년 말까지 국내 ETF 시장은 연평균 26%의 고성장률을 기록했다. ETF를 제외한 기타 공모펀드의 연평균 성장률은 4%에 그친 부분은 국내 투자자의 ETF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의미한다. 2020년대 들어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주식투자 열풍에 힘입어 국내 상장된 ETF 순자산 총액은 2019년 말 52조원에서 2025년 2월 말 187조원으로 불과 5년 만에 3.6배 성장했다.
신 연구원은 “이러한 시장 선호를 고려할 때, 퇴직연금 사업자 입장에서도 다양한 ETF 상품의 거래 지원 여부가 핵심 경쟁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편 은행업권은 2021년 하반기, 보험업권 중에서는 삼성생명이 2023년 하반기부터 ETF상품을 퇴직연금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 상품 수와 다양성이 증권업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증권 플랫폼 경쟁력 타 업권 압도 = 증권사들의 플랫폼 경쟁력이 타 업권을 압도하는 점도 퇴직연금 자금이동을 끌어당기는 요인이다.
신 연구원은 “증권 앱은 실시간 매매 시스템, 시계열 차트, 호가창 제공 등 고도화된 기능을 통해 모바일 거래 편의성 측면에서 타 금융업권을 압도하고 있다”며 “거래를 목적으로 개발된 증권 앱은 이용자들의 월 평균 접속시간은 136분, 평균 접속 횟수는 53회에 달할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이러한 이용 패턴은 플랫폼의 기술적 경쟁력 확보를 위한 치열한 개발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 주식 및 가상화폐 앱 월평균 사용자수는 업비트가 335만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키움증권 영웅문S로 월평균 사용자수는 295만명, 3위는 KB증권 마블(M-able), 4위는 미래에셋증권 M-Stock 순이다.
반면 은행 앱의 경우 투자 관련 기능에 대한 수요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신 연구원은 “은행 앱의 경우 이체, 송금 등 일상 금융서비스에 최적화되어 개발됐고 보다 광범위한 이용자층을 고려해 간편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지향한다”며 “이용자들의 평균 접속시간이 월 20분 8내외로 짧고, 주로 단순 거래 위주로 사용되다 보니 투자기능 고도화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기업과의 거래 관계, 전국적인 영업망 등 전통적 강점을 기반으로 퇴직연금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해 온 은행업권은 가입자 눈높이에 부합하는 상품 다양성 확보 및 플랫폼 고도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적립금의 이탈 속도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위 7개사가 증권 퇴직연금 적립금 95% 점유 = 증권업권 내 퇴직연금 적립금 비중 95%를 점유하는 상위 7개 증권사(미래에셋, 현대차, 한국투자, 삼성, NH, KB, 신한 등)가 국내증권사 자산관리 부문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5% 수준에 달한다.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이로 인한 잠재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퇴직연금 사업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한 증권사들에게 자산관리 역량 강화와 경상적인 이익창출력 보완의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퇴직연금 시장의 자금이동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금융상품 판매 영업력을 제고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경쟁 지위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계좌는 고액·고령자산가를 기반으로 하는 개인연금 시장 및 자산관리시장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향후 수익 확대의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다. 때문에 대형 증권사들은 경쟁지위 유지를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야 함에 따라, 높은 성장세를 나타내는 퇴직연금 사업의 전략적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최근 키움증권이 퇴직연금 사업을 준비하는 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