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환 의사없는 카드앱 자동대출, 사기 아냐”
대법, 유죄 선고 원심 파기 환송
“비대면 대출, ‘사람 기망’ 아냐”
대출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더라도 대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비대면 전산 자동심사 방식의 카드론 대출을 받은 경우라면 ‘사람’을 속인 것은 아니므로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카드론을 통해 대출금 3450만원을 편취한 혐의(사기)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2022년 6월 휴대전화에 설치된 카드사 앱을 이용해 1850만원을 대출받는 등 총 3450만원을 수령한 뒤 변제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는 거래처 대금과 사채 등으로 2억원 상당의 채무를 지고 있었고 지인들에 대한 채무도 1억원에 달하는 등 이미 변제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A씨는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카드사들로부터 동시에 다수의 대출을 신청해 편취한 것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같은 날 동시에 카드 대출을 받는 경우 대출정보가 서로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여러 카드사에서 1억3000여만원을 대출받을 생각이었는데, 실제로는 기존 채무만 3억원에 육박하고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 원리금도 월수입을 초과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1심과 2심은 A씨의 사기죄를 인정했다. 채무초과 상태에서 변제 계획 없이 다수의 대출을 동시에 신청한 점과 첫 상환일부터 연체가 발생한 점 등을 근거로 편취의 범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증거능력도 인정된다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2심도 이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형법상 사기죄 성립요건인 기망행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하고 따라서 사람에 대한 기망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경우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비대면 대출을 활용한 A씨의 행위가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들의 앱을 이용해 자금용도, 보유자산, 연소득정보 등을 입력한 데 따라 대출이 전산상 자동적으로 처리돼 대출금이 송금됐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회사 직원이 대출신청을 확인하거나 송금하는 등 개입했다고 인정할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며 “피고인이 피해회사 직원 등 사람을 기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은 사기죄에서 기망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