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영문이름, "로마자표기법 다르게 표기 가능
법원 “행복추구권 침해 … 인격권 존중해야”
여권 영문이름이 로마자표기법과 맞지 않는다며 이를 바꾸지 못하게 한 정부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12부(강재원 부장판사)는 만 4세 아동 A씨의 법정대리인인 부모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불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 부모는 2023년 8월 A씨 여권 영문이름에서 ‘태’를 로마자 ‘TA’로 기재해 여권을 신청했다. 하지만 여권 발급업무를 맡은 수원시는 로마자표기법에 어긋난다며 ‘TAE’로 바꿔 여권을 발급했다.
A씨 부모는 이를 원래대로 ‘TA’가 포함된 영문이름으로 바꿔달라고 외교부에 신청지만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A씨 부모는 재판에서 “A 이름이 로마자로 표기되는 외국식 이름과 음역이 일치하는 이상 그 외국식 이름을 로마자 성명으로 표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씨 부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변경을 신청한 로마자 성명이 문체부 고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의 규정 내용과는 다소 다르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여권에 대한 대외신뢰도 확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라거나 범죄 등에 이용할 것이 명백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변경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변경하고자 하는 성명에 대해서도 원칙적 표기 방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로마자 성명 변경을 가능하게 한 규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특히 문체부 고시 ‘국어의 로마자표기법’은 어디까지나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상식적으로도 ‘cap(캡)’, ‘nap(냅)’, ‘fan(팬)’ 등 모음 ‘A’를 ‘애’로 발음하는 단어를 무수히 찾을 수 있다”며 ‘TA’의 음역이 ‘태’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단정해 변경을 제한할 객관적이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성명을 여권에 로마자로 어떻게 표기해 기재할지 결정하는 것도 개인의 자기 발현, 개인의 자율에 근거한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영역”이라며 “기본권 보장 의무를 지는 행정청 등은 공익을 중대하게 훼손하지 않는 한 가급적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