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트럼프 통상협상, 속도보다 내실이 중요하다

2025-04-22 13:00:22 게재

트럼프 대통령의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동시다발적 관세로 워싱턴은 관세전쟁이 한창이다. 협상차 오는 국가들,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탐색 중인 국가들, 여기에 국가별 상호관세, 품목별 관세 등의 예외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기업들의 정보전과 로비, 싱크탱크들의 백가쟁명 등이 섞여 겉으론 평온하지만 물밑으로는 치열한 정중동의 시간이 진행중이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미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고, 메인스트리트에서는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성으로 소비 심리 위축, 기업 투자 지연이 현실화되고 있다. 50%에 이르던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도 몇주 만에 40% 초반으로 떨어졌다.

4월 2일 트럼프 상호관세 발표로 주식시장 등이 패닉에 빠지자 90일간 유예라는 급작스러운 U-턴을 하면서 다소간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 주된 원인은 이 유예기간 내에 주요 국가들과 협상을 통해 관세를 완화시킨다는 것이었다.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더라면 꿈쩍도 하지 않았을 국가들이 다급하게 워싱턴으로 날라와 트럼프가 ‘직접’ 협상을 해서 이렇게 많은 양보를 얻어냈다며 ‘승리 선언’을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급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유럽연합 등에 비해 협상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으로 생각되는 국가들, 즉 한국 일본 영국 등 미국의 안보우산 하에 있거나 우호적인 국가들을 대상으로 협상을 서두르려고 하는 것이다. 지난주 일본에 이어 이번주 한국과 협의를 하겠다는 것에는 이런 미국내 보다 큰 정치적 경제적 배경과 계산이 깔려있다.

향후 4~5년 한미 경제협력 틀 새로 짜는 협상

이러한 상황을 한국 입장에서 돌려 보면 지금은 서두를 상황이 아니라는 패가 나온다. 우선 모든 국가가 10% 관세를 맞는 상황에서 우리가 불리할 게 없다. 이 10%는 기존의 관세에 추가해서 얹혀지는 것이므로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평균 관세인 3.3%에서 우리는 한미FTA로 인해 0%에서 얹혀지는 것이다.

한미FTA 무용론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많은 기업들이 관세인상에 대비해 이미 미국내 창고에 재고를 쌓아놓은 상황이라 몇개월 더 버틸 여지가 있다. 90일 유예기간이 다가올수록 미국내에서 협상타결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압박은 더 커질 것이다. 초기에 타결을 서두르는 것보다 타국가 등의 협상진전 상황 등을 보면서 호흡을 길게 가지고 90일 유예 전후 타결을 목표로 실리를 챙기는 것이 우리에게 더 나은 옵션이다.

무엇보다도 서두를 수 없는 이유는 우리 국내의 정치상황 때문이다. 협상결과에 따라서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 및 기술협력, 국내 제조업의 향후 판도, LNG 등 에너지 수급, 환율, 향후 수년에 걸친 정부 재정의 투입 등이 결정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소위 비관세장벽 협상 결과에 따라 자동차, 환경, 농수산 분야, 우리 제도의 개선, 규제완화 등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협상의 본질은 단순한 관세협상이 아니라 향후 4~5년간의 한미 경제협력의 구조적 틀을 새로 짜는 중차대한 협상인 것이다.

협상가들은 흔히들 국내 협상이 대외 협상보다 더 힘들다는 말을 한다. 위에서 언급한 사안들 하나 하나가 서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른 정부부처 기업 농어민 NGO 등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때로는 우리 경제 제도의 선진화를 위해 단기적 고통을 감내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하고, 이로 인해 피해보는 집단에 대해서는 국내 보완대책 재정지원 등이 병행되어야 하는 고도로 복잡한 정치경제적 의사결정과정이다. 정부와 국회의 리더십이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들이다

불과 50여일 후면 새정부가 출범하는데 향후 수년간의 정치적 경제적 재정적 책임을 져야 할 협상 관련 의사결정과 타결시점을 언제로 잡아야 할지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자명하다. 트럼프 1기 당시 우리가 탄핵과 대선 과정을 거칠 때 서서히 시작되는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해 당시 한국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에 통상교섭본부를 신설하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던 선례가 있다. 이로 인해 새 정부 출범 후 지지율이 70%를 넘는 안정된 정치적 리더십 하에 트럼프 1기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할 수가 있었다.

정파 초월한 대국적 통상 협력 긴요한 시점

물론 트럼프 2기는 1기에 비해 관세전쟁의 강도와 압박이 더 크므로 사전 정지작업 차원의 대미 실무 협의는 계속 성실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과도기적인 상황 하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국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대미 협의의 내용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등 관련 위원회의 의원 소수로 구성된 TF를 통해 긴밀하게 공유하면서 새 정부가 들어온 이후 협상의 인수인계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할 것이다.

전쟁이 벌어진 판에 통상조직개편 등 논의로 최전방의 전투조직을 흔드는 것은 총구를 바깥이 아닌 안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다. 향후에도 정부 전체의 협상력을 심각히 약화시키는 것으로 현명치 못하다.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역사는 정파를 가리지 않는 거국적 협조로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큰 성과를 만들어왔다. 진보정부에서 시작하고 보수정부에서 마무리를 지은 한미FTA가 대표적인 사례다. 트럼프 2기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서 정파를 초월한 대국적 통상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점이다.

여한구 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전 통상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