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경제학의 부활 - AI 비서가 소환한 ‘완벽한 시장’
지난달 열린 오픈AI의 봄 업데이트, 구글 I/O, 마이크로소프트 빌드 등 전세계의 이목이 쏠린 거대 기술기업들의 연례행사에서 공통으로 쏟아진 핵심 화두는 단연 ‘자율형 AI 에이전트(Autonomous AI Agent)의 일상화’였다. 이는 질문을 던지면 답을 주던 수동적인 챗봇 단계를 완전히 뛰어넘는다.
이제 인공지능(AI)은 사용자가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상황을 스스로 읽어내고 행동한다. 수많은 이메일의 맥락을 파악해 적절한 답장을 보내고, 빈 시간을 찾아 가장 저렴하게 비행기표와 식당을 예약한다. 심지어 눈 깜짝할 새 주식시장의 흐름을 분석해 투자비율을 유리하게 조정한다. 인간의 삶을 능동적으로 대리하는 완벽한 AI 비서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경제학의 완전한 합리성 현실화 될까
필자는 이러한 기술적 도약을 지켜보며현대 경제학을 지탱해 온 오래된 가정 하나를 떠올렸다. 시장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밑바탕에 깔아두는 기본 전제인 ‘완전한 합리성(Perfect Rationality)’이다. 고전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원리를 이론적으로 설명할 때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즉각 알아채고 계산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또한 이들은 감정이나 도덕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만 오차없이 결정을 내린다고 보았다. 경제적 이익만을 좇아 계산기처럼 정확하게 행동하는 인간상 이른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을 상상한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이 가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수학적 상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 등 여러 학자가 지적했듯 현실의 인간은 결코 수식처럼 딱 떨어지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 순간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분석할 수 없고, 때로는 피로감에 지쳐 판단을 미루거나 감정에 휘둘려 충동적인 선택을 한다. 모든 정보를 알 수 없기에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고 타협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렇기에 완벽한 판단을 내리는 개인들이 모여 이상적인 균형을 이룰 것이라는 고전적 시장 모델은 늘 인간의 불완전성 앞에서는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지금, 일상으로 스며든 인공지능을 통해 이 비현실적이던 경제학의 가정이 문자 그대로 현실이 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할 이 똑똑한 비서들은 인간과 달리 감정에 흔들리거나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주인을 대신해 빛의 속도로 쏟아지는 수만가지 정보와 변수를 분석하고, 어느 쪽이 가장 이득이 될지를 확률적으로 정확히 계산해낸다. 수백년 전 경제학자들이 상상 속에서 빚어냈던 ‘완벽하게 합리적인 행위자’가 이제 모든 사람의 주머니 속에 쥐어지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시장의 모든 참여자가 이토록 완벽한 합리성을 갖추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일각에서는 이기적인 AI들이 맹목적인 속도전을 벌이다 사회적 혼란이 올 거라며 섣부른 디스토피아를 경고한다. 하지만 고전경제학은 완벽한 합리성이 사회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 예측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손’이 가장 완벽하게 작동해 낭비없이 자원이 배분되는 ‘균형(Equilibrium)’을 찾아간다고 보았다.
수많은 점들로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빛의 속도로 연결되고,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이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매끄럽게 작동하는 진정한 의미의 ‘완전 시장’이 도래할 수도 있다. 모두가 똑똑한 AI 비서를 품은 사회는 누군가의 우려처럼 한순간에 멈춰 서지 않는다. 과거 학자들이 칠판 위에 수식으로 그려두었던 그 고요하고 효율적인 시장으로 조용히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 완벽한 균형 상태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자본주의 시장의 주요 원동력 중 하나였던 ‘차익거래(Arbitrage)’와 ‘초과 수익’의 종말이다. 현실의 인간들이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정보의 비대칭성’과 타인의 ‘비합리적 판단’에 있었다.
발 빠른 소수는 이 빈틈을 파고들어 이익을 취했다. 그러나 모두가 동일한 수준의 완벽한 AI 비서를 대동하는 시장에서는 빈틈이 생겨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호재를 상대방의 AI도 동시에 안다. 철저한 계산만이 남은 시장은 누구도 초과이익을 낼 수 없는, 경제학 교과서 속 ‘완전경쟁시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게 될 것이다.
‘완전시장’ 오기 전 거칠 과도기 주목해야
하지만 현실이 단숨에 이 매끄럽고 평평한 균형 상태로 건너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예의주시해야 할 지점은 시장의 모든 참여자가 동등한 수준의 AI를 소유하기 전까지 필연적으로 거칠 ‘상전이(Phase Transition)’ 과도기다.
사실 현재 시장은 고전경제학의 합리성 가설을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 강력한 연산능력을 대리해 줄 고도화된 AI에 대한 접근성이 개인마다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의 시장에는 빛의 속도로 최적화를 수행하는 소수의 ‘초합리적인 에이전트’들과, 여전히 제한된 정보 처리 능력에 머물러 있는 다수의 ‘전통적 인간’들이 섞여 있는 혼합상태(Mixture State)가 형성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기형적인 혼합상태는 전통 거시경제이론으론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맹점이다. 고전이론은 주로 참여자들이 모두 합리적이거나 비슷한 수준의 한계를 지녔다는 동질적(Homogeneous) 가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유례없는 과도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필연적으로 정보처리능력 격차를 활용한 극단적인 ‘차익거래’가 발생할 것이다.
마치 과거 월스트리트에서 알고리즘 매매를 먼저 도입한 소수의 금융사들이 비효율성을 파고들어 막대한 부를 쌓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강력한 AI를 선점한 집단은 연산능력을 무기 삼아, AI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집단이 만드는 비합리적인 빈틈과 판단 지연을 파고들어 부를 축적할 것이다. 시장 전체가 효율적인 균형에 도달하기 전까지, 우리는 기술 접근성이 곧 정보 비대칭성으로 직결되는 거대한 부의 이동 시기를 거치게 된다.
도구 실행자에서 설계자로 진화 필요
이 극심한 상전이의 끓는점을 통과하는 동안 요구되는 새로운 정체성은 명확하다. 단순히 먼저 강력한 AI 비서를 쥐고 차익 거래의 승자가 되려는 1차원적 속도전에 머물러선 안된다.
우리는 도구를 다루는 단순한 실행자에서 벗어나 생태계 규칙을 조율하는 ‘설계자(Architect)’로 진화해야 한다. 강력한 AI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혼재된 위태로운 과도기를 어떻게 무너지지 않게 관리할 것인가. 단기적인 승자독식 구조가 사회 시스템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지 않도록 AI 접근성에 대한 안전망을 구축하거나 에이전트 간의 속도경쟁을 제어하는 등 새로운 사회적 룰과 ‘메커니즘 디자인(Mechanism Design)’을 도입해 충격을 흡수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다.
나아가 이 혼합상태가 끝나고 마침내 모두가 완벽한 AI 비서를 소유하게 될 ‘새로운 균형’의 시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경제학의 오래된 가설이 현실이 되어 모든 차익 거래가 소멸한 평원의 시대. 완벽한 AI가 연산과 최적화를 전담하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의 자리를 꿰찼다면, 이제 우리는 제도를 설계하고 기계에게 올바른 ‘목적 함수(Objective Function)’를 쥐여주는 ‘지혜로운 인간(Homo Sapiens)’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낡은 경제학 교과서가 예언한 시장의 문턱에서,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정답을 계산해 내는 속도가 아니라 그 차가운 최적화 공식 위에 어떤 방향성의 질문을 던질 것인가로 증명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