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일류 대기업은 왜 담합을 못 끊을까
소비자들이 대기업 제품을 선택할 때는 이유가 있다. ‘믿을 수 있다’는 무형의 가치 때문이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당장의 이익 몇 푼보다는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긴다. 이런 대기업들이 왜 ‘담합’이란 반칙의 유혹에서는 벗어나지 못할까.
최근 시장을 뒤흔든 밀가루 담합 뉴스에서도 익숙한 이름이 등장했다. 국내 식품업계 부동의 1위, CJ제일제당이다. 설탕과 밀가루, 전분당에 이르기까지 밥상물가와 직결된 기초가공재료 담합에는 단골손님처럼 이름을 올렸다.
왜 이들은 브랜드 가치 하락까지 감수하고 잊힐 만하면 담합을 반복할까. 구조를 뜯어보면 그들만의 ‘남는 장사’가 보인다. 첫째는 시장구조적 특성이다. 설탕 밀가루 전분당 시장은 지난 수십 년간 5~7개 안팎의 소수 대기업이 장악해 온 전형적인 독과점 구조다. 새로운 경쟁자가 끼어들기 힘든 밀폐된 운동장이다. 눈빛만 교환해도 가격이 통하는 담합의 온상이 되기 쉽다.
둘째는 전문경영인(CEO)의 이기주의다. 대기업 CEO 평가는 매년 경영성적표로 결정된다. 당장 올해 실적이 자리를 보전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CEO에게 손쉬운 담합은 거부하기 힘든 마약과 같다.
더 큰 문제는 책임의 시차다. 담합은 은밀하게 이뤄진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되어 제재되기까지는 대개 5~10년이 걸린다. 실제 최근 적발된 밀가루 담합 사건 역시 7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막상 사건이 터졌을 때, 담합을 주도했던 당시 경영진은 이미 자리를 옮긴 뒤다. 후임 CEO가 설거지를 맡는 구조다 보니, 당시 경영진으로선 ‘밑지는 장사’가 아닌 셈이다.
단적인 예가 있다. 담합이 횡행하던 시절 CJ제일제당을 이끌던 CEO는 최 모 전 대표이사다. 그는 임기 당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최대 실적을 달성했다며 대한민국 100대 CEO에 선정됐다. 화려한 경영실적을 훈장 삼아 현재는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몇 년 뒤 회사는 수천억원의 과징금 폭탄을 맞고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원인을 제공한 경영자는 승승장구하는 이 모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결국 지금의 법체계로는 대기업의 반칙을 막을 수 없다. 적발되더라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을 깨부숴야 한다. 불법으로 얻은 이익을 훨씬 상회하는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고, 당시 불법을 결재하고 묵인했던 경영진까지 끝까지 추적해 책임지게 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주병기 공정위원장이 추진하는 과징금 체계개편과 처벌강화 방향은 시의적절하다. 반칙으로 쌓아 올린 가짜 실적훈장을 달고 떵떵거리는 ‘먹튀 경영인’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시장의 룰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